이문대 (AUG~SEP, 2024)

두 사람의 성질

 
1.
이카본에게서 형편없는 말—아마, 그의 기준에서—을 듣는 모르간 보고 싶다
모르간. 내가 당신이 옳으냐 옳지 않으냐의 문제에서 당신을 정죄 않기를 택했다면…… 내게 책임을 청한 적 없는 당신을 책임지는 것이 나의 옳음이라면…… 내가 당신으로 인하여 살고 죽지 않아도 당신을 사랑해 마지않는다면…… 그리하여 내가 당신 보기에 더 이상 옳은 사람이 되지 못한다면
……그래도 나를 사랑해줄 거니?
그녀는 조금 마음이 뭉개지는 기분이 든다. 이런 말은, 이런 날것의 감정은 마음에 무리가 온다. 모르간에게 언제나 진심이란 그녀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이는 것이었으므로, 언어가 곧 진심일 적에는 그녀는 도무지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알 수 없다.
1-1.
당신이 지표 삼았던 내 모습이 되지 못한대도 사랑해주겠느냐는 물음에 그녀는 오랫동안 레토릭을 내쳤던 혀를 끌어온다.
나는 네가 아이스킬로스가 아니라 사포를 인용하기 때문에 사랑했던 것이고 네가 신앙하는 것이 베누스가 아니라 미네르바였기 때문에 사랑했던 것이고 저 많은, 그 많은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하던 이가 내 손을 잡아오며 눈물 흘리는 것에서 신념은 비로소 감정과 구분되는 것임을 확신했을 뿐이라고.
자 그러니 눈먼 자들의 성채에서 혼자 눈을 뜬 자와 같은 말을 하는 현자여……

2.
이카본에게는 향기로운 것과 단 것을 모으는 취미가 있다. 모르간의 기억 속에 없는 취미였던 것을 생각하면, 아마 그가 천문대에서 되살아난 후에나 생긴 취미일 것이다.
모르간은 그가 물 대신 평생 홍차를 마신대도 다 마시지 못할 찻잎을 안겨주고, 그가 뿌리는 플로럴 계통의 향수들에 턱을 괴며 나른하게 웃으면서도 도통 이해 못할 얼굴만은 거두지 못한다. 어째서 이카본은 그리도 향기로운 것을 좋아할까. 무척 그답다고 생각하지만, 낯선 것은 낯선 것이다.
……차를 우려놓고 몇 번인가 향만 맡고선 책에 푹 빠져 있다가 식어빠진 것을 내버리기 일쑤면서.
그래서 모르간은 어느 하루, 이카본에게 묻기로 한다. 어째서 그러는 것이냐고. 그는 대수롭지도 않게 웃으며 말한다.
🕰️ - 홍차라는 건 근본적으로 향으로 마시는 거니까.
🍎 - 너는 마치 번제물을 흠향하는 신들처럼 말하는구나. 단 한 번 인간 아닌 것으로 너를 자칭한 적 없으면서.
인간으로 살고, 인간만으로 존재하는 자가 신과 같은 행위가 몸에 밴 것은 어떤 기분이고, 어떤 원리인가. 모르간은 이 낯섦이 불편하고도 저어된다. 그러나 떨쳐내고 싶지는 않다.
모르간은 이카본이 우려낸 찻잔을 가져간다.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쥔 것의 향을 맡는다. 아주 오래 전,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책을 읽던 그날 그 시절의 아이처럼.

3.
🕰️ - 혁명의 개가 같은 건.….. 온 세계와 민중이 공감할 만한, 그런 일종의 러브송이겠지.
🍎 - (……웃어야 하는 대목인가?)
가끔 모르간은 이카본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요정안이 보여주는 정보값으로도 따라가지 못할, 어떤 것이라서

4.
모르간에게서, 내 젊은 날의 열정은 쇠했다는 말을 들을 적마다 이카본의 마음은 어딘가가 쿡 찔리는 것만 같다. 무얼까. 왜일까. 결국 그 열정이 쇠한 모습을 사랑하는 자신이 아니었나.

5.
이카본은 기본적으로 모르간에게 화를 내는 일 같은 건 없었겠지만… 바반시랑 친해지기 시작했을 때 바반시가 “니가 먹는 비빔국수도 어머님이 비벼주신 거다” 이런 소리 하면 뢰알 :         ㅁ 하다가 모르간 찾아가서 그날만큼 화낸 적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고🤔
애꿎은 모르간이 봉변당한 게 아니라 이건 진짜로 모르간이 원인이 맞잖아… 그리고 이카본은 이미 모드레드라는 선례도 있었고
그런데 모르간의 컨트롤프릭에는 결국 합의점을 못 찾았을 것 같다고 생각함…

6.
🍎 - 어째서 너 같은 인간들은 세상을 네 일생 안에서, 네 생애에서 바꾸려 할까.
🕰️ - …….
🍎 - 그러려거든 인간 아닌 것이 되면 될 것을. 시간을 얻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짧은 시간을 이루지 못할 것을 위해 허비하느냐.
🕰️ - 인간의 세계는 인간이 바꾸어야 하니까.
🍎 - …….
🕰️ - 어째서 당신 같은 자들은 인간 아닌 것이 인간으로부터 스스로 유리될 수밖에 없도록 말하는 걸까.
두 사람이 나란히 서서 요정국의 정원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하는 게 보고 싶다

HAPPY END?

 
1.
글로스터에서 가면무도회가 열리거든, 의례상 카멜롯에도 초청장이 도착한다. 꼭 두 장.
여왕 모르간은 그런 자리에 관심이 없다. 설령 하룻밤 여흥이라 한들 페르소나를 감추는 일부터 그녀에게는 영 구미가 당기지 않는 일이고, 참석도 않은 지 오래였다. 번번이. 그러나 추밀원 의장 이카본이 취임했을 적에, 모르간은 초청장을 벽난로에서 타닥거리는 불에 사르는 대신 이카본을 불러들인다.
초청장은 둘. 참석자도 둘. 모르간은 이카본에게 바반 시를 데리고 가면무도회를 다녀오라고 이른다. 그 애가 내 손을 잡고 회랑에 들기를 적잖이 싫어할 텐데. 이카본이 말하거든 모르간은 픽 웃어버리고선, 대수롭잖은 것처럼 응수한다.
너는 무엇이 정말 싫어서 밀어내는 것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아도 밀어내는 것인지 알고 있다. 요정안도 없는 네가 그리 보거든, 나는 네가 거짓말을 한다고밖엔 말할 수 없겠구나.
아, 정말이지 너무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녀가 딸을 얼마나 제 기준대로 아끼는지도. 그 또한 너무하다. 이카본은 그만 고개를 젖히고선 유쾌하게 웃어넘긴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딸이 제 어머니의 것이라면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배배 꼬인 농담조로.
당신이 좋아하는 내 얼굴에 손톱자국 나서 돌아와도 불만 없기야.

해시태그

 
@얘들아 한쪽이 상대에 대한 기억을 전부(감정까지도) 잊게 된다고 하면 각각 자기 기억 없애는지 상대 기억 없애는지 말해주라
🕰️ - 육천 년의 기억과 천오백 년의 기억. 슬프지만 비교할 가치도 없군.
자연스럽게 자기 기억 없애려고 약병 들면 황급히 이카본 손목 잡는 모르간…이 아닐까. 기억을 잃고 난 후에 그는 자신을 다시 사랑할까? 이번에야말로 기어코—범인류사 모르간에 대한 사랑과 기억조차 휘발당했으니—모르간을, 모르간의 요정국을 정죄하려 들지는 않을까? 그 모든 기억을 안고 육천 년의 부채를 지고 살아야 하는 건 아닐까? 수많은 의문과, 모든 미련 때문에.
매끄러운 말도 억지스럽게 휘발되어버리고, 이카본은 한참이나 모르간을 바라본다. 그리고 가만히 웃으며 말한다. 언제나 그녀를 달래는 마법의 말. 혀에 꿀을 바른 듯한 말재간.
그러나 온전히 불안을 잠재우지는 못하는 말.
🕰️ - 우리는 같은 것을 두려워하고 있으니, 또 다른 당신조차 사랑했던 내가 마시는 게 맞아.

@드림주/드림캐 앞에 무릎 굽히고 앉아 신발 신겨주는 드림캐/드림주
전정 결심하고 모르간이랑 같이 요정향으로 가기 전날에 모르간한테 무릎 꿇고 구두 신겨주는 이카본
🕰️ - 구두 사 신기면 도망간다더니……
투정 같은 말에 그녀는 픽 웃어버리고 만다. 어린 그는 사랑스럽고 고상하고, ……

적폐 상아사과

 

토네리코

 

요정기사들이랑 상아탑의 남자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