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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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취는 에티카를 덮는다
소돔은 에티카와 떠나며 후편, 이카본과 부친의 정부 모르간 당신을 그리워하며 내 인생은 흘러가는군요. 편지 서두조차 여자는 아름다웠다. 펜을 오래 대어 번진 실금들과 망가진 첫 문자. 그리고 담담히 맺은 문장. 그 뒤로는 여자가 썼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리멸렬하며 목적과 끝과 시작을 알 수 없는 문장들 일색이었다. 그날, 부친의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온 내게 여자는 불쑥 말했다. 죄송했어요. 그때는 제가 어려서, 경우를 몰랐어요. 여자가 내게 처음 한 말이었다.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우두커니 응접실에 마주 앉아만 있던 사람에게, 지난 며칠 여자의 이름을 호명한 것 말고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던 사람에게 여자는 오랫동안 해야 했던 말을 참아왔던 것처럼 말했고 곧장 입을 닫았다. 고작해야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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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은 에티카와 떠나며
이카본과 부친의 정부 모르간 눈이 오고 있었다. 싸라기처럼 흩뿌리는 것도 눈이 되다 만 언 비도 아닌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나 내릴 법한 함박눈이었다. 여자는 그런 날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하고 현관으로 들어왔다. 양손에 하나씩 쥔 트렁크 두 개가 챙겨온 짐 전부였고 나보다 어렸다. 검은 리본으로 틀어 올려 묶은 블론드의 색이 정갈하니 고왔고 푸른 눈이 자못 사랑스러워 보이는 여자였다. 때때로 성인이 되어가며 색소가 옅어진다는 사람이 있다더니 여자 또한 그럴는지. 벌써 블론드 끝이 희끗하게 흐려지는 듯했다. 그조차 백금처럼 창백하게 빛나 정갈하다는 말이 정확하게 들어맞는 모습이었다. 집안 곳곳을 바삐 둘러보느라 애석하게도 그 눈은 또렷이 지켜볼 수 없었지만 입매가 단정해 싱그럽게 웃으면 퍽이나 어울릴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