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대 (FEB, 2024)

두 사람의 성질

 
1.
언제나, 상대로 하여금 애정을 천칭에 올리게끔 하는 것은 이카본임에도 불구하고. 절박하게 상대의 소맷자락을 움켜쥐고 애원한 사람은 모르간이 아니라 이카본이다.
어떻게 하면
어떻게 하면 당신의 연인이 될 수 있지?
항상 혀에 꿀을 바른 듯 매끄러운 말씨와 여유로운 웃음을 배반하듯 새빨갛게 뺨이 달아올라서 말은 무작정 터져나온다. 아, 설령 얼굴을 붉히고 겸연쩍어하고 늘 쉬이도 눈시울을 달구는 그라고 한들 그녀에게 꼭 지금처럼 절박하게 매달릴 거라고 모르간이 생각한 적 있었던가?

2.
모르간은 종종 뜻 없이 깨어 있다. 그다지 문제가 생겨서는 아니다. 어차피 요정은 수면이 필요치 않은 것을, 그간 시계추처럼 관성적으로 잠들었을 뿐이다. 깨어서 침대에 앉아 멀거니 천장을 올려다보는 날이면 협탁에는 이런 메모가 놓여 있다. 이카본의 필체로.
여전히 잠 못 이루는 연인에게.
그녀의 어린 애인이 남기는 메모에 어느덧 익숙해지고 만다. 그녀는 결국 침대에 엎드려 희미한 불빛에 기대 짤막하게 적은 편지 몇 줄을 되풀이해 읽다가, 결국 잠을 청한다.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으로 인하여.

3.
아르토리아에게도 나를 대적하고 타도할 자격이 있다고 했지 그 이상의 어휘를 사용하지는 않았던 모르간이 이카본에게만은 심판관처럼 “정죄”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했다는 게 너무 좋다
범몰간의 기억에서 본 그 이카본은 당연히 자길 정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범몰간이 아발론으로 간 이후, 온전히 그만이 가진 생애를 통해 이카본이 나는 변했고 옳음만을 밀어붙이는 것이 언제나 궁극적인, 최종적인 가장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 걸 범몰간과 청밥을 떠나보내면서 깨달았다……는 걸 모르간에게 끊임없이 이해시키고 당신을 정죄하지 않는 게 나의 책임의식이라고 말하는 게 역시 너무 좋다
옳다는 게… 그건 안 돼!라고 잘라내는 게 꼭 “진짜 옳음”은 아니라는 거야…… 라고 말하는 조용한 말에 비로소 그를 사랑하게 되는 이문대의 모르간
3-1.
근데 솔직히 말해서 당연히 이카본이 진짜 정죄하려고 들었으면 모르간 분명 그건 또 내주먹이이렇게세다 하지 않았을까
어디 정죄해볼 테면 해봐라 << 이거였을 거임
정죄를 안 하겠다니까 사랑하게 된 거임
모르간 진짜 웃긴 사람이네…
너는 나를 정죄할 자격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하지만 내심 맘속으로는 어디 진짜 정죄하기만 해봐라 주먹올라가진짜 하고 있었음
뭐 이런 여자가 다 있냐? 너무 귀엽네

4.
모르간이랑 처음 키스할 때의 이카본… 정말 생각 과다라 그때만큼 모르간이 요정안OFF하고 싶다고 생각한 때가 없었으면 좋겠다. 키스하면서 고개 틀 때 슬그머니 눈 떴다가 무심코 눈 마주치자마자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그의 과잉생각.
아, 숨소리 날 때면 몸을 떠는구나. 등허리 쓸어주면 어깨를 움츠리고. 허리까지 한손에 잡히는구나. 입천장에서 간지러워하네. 이런 목소리도 내는구나. 속눈썹도 길어. 아. 눈 마주쳤다.
사실 요정안은 독심술이 아니라 설정상 이런 게 아니긴 한데ㅋㅋㅋ 그냥 보자마자 생각이나 본질적인 감정이 멋대로 흘러들어와서 황급히 이카본 눈 가리는 모르간이 보고 싶다고
왜 자기 눈 안 감고 나를…되는 이카본 키르히아이젠
 
5.
이문대 모르간이 이카본에게 요구하는 것은 혼인 관계의 그것이고, 범인류사 모르간이 이카본에게 요구했던 것은 연인 관계의 그것이라는 점이…… 모르간이라는 인물과 이카본이라는 인물 사이의 관계를 다르게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애인 사이일 때는 끝없이 놀라움을 준다고 해야 할지… 어느 정도의 무지가 설렘을 만든다는 말. 범몰간에게 있어 이카본은 정말이지 지겹기 짝이 없는 윤리와 이성의 화신인 데다가 더군다나 계몽주의적인 이성이 고평가되는 가치가 된 건 중세 이후의 일인 걸 감안했을 때 더더욱 ‘매력적이지만 결코 취향은 아닌’남자가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반대로 이카본은 이문대 모르간에게 끝없이 약속을 지키고 신뢰를 주고 납득시키는 종류의 사람이니까…… 혼인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게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이라잖아…? 그래서 이몰간은 그와 긍정적이고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카본은 좋은 사람이고 충실한 남편이 될 거고 매일 사랑하는 상대에게 잘해주고 싶지만 뭔가 ‘자극’을 찾는다면 결코 좋은 연애상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해서……

6.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은 모르간 르 페이의 얼굴을 좋아한다.
모르간은 이카본의 눈이 그녀에게 굴러올 때마다 그의 감정을 그렇게 문장화한다. 황홀하게 젖어드는 아메지스트, 이내 속삭이는 그녀를 향한 사랑이 부차적으로 문장을 뒷받침한다.
어느 밤에, 모르간이 이카본에게 머리를 풀어달라고 했을 때도. 가만 마주보고선 머리 뒤로 돌아간 손이 조심스럽게 매듭을 풀고 끈을 당긴 순간. 당겨 묶었던 머리칼이 쏟아지고 흩어질 때 이카본은 호흡하는 것조차 잊고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본다. 못박인 듯 고정된 눈길은 기어코 체면도 내팽개치고선 넋을 놓는다.
아. 이만하면 도무지 관용구처럼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 그리도 좋으냐…….
……라고, 도무지 웃음으로 눙치고 뭉갤 수가 없다. 홀에서 들려오는 자연스러운 상찬을 몇 번이나 잘라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하면서.
 
 

HAPPY END?

 
1.
이렇게 부슬비가 내리는 늦은 오후에 할일 없이 침대에 누워 모르간이랑 는적거리는 이카본
모르간은 말수가 적고 이카본 또한 구태여 필요 없는 말을 늘어놓지는 않으니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까지 들릴 만큼 고요해서, 제 손을 베개 삼아 받친 이카본은 물끄러미 모르간을 내려다보다 콧잔등을 톡 내리친다. 이쪽으로 파란 눈이 굴러오면 또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살살 뺨을 만지거든 적잖이 귀찮아해도 손을 물리지는 않는다. 그녀는 가만히 그를 향해 돌아눕고, 눈을 감으면 이카본은 슬 눈매를 접어 슬 웃고는 고개를 숙여 제 손으로 건드렸던 곳마다 정확히 그러나 떨어지고 싶지 않은 티를 내며 헤무르게 입을 맞춘다.
좀처럼 마음을 말해주지 않는구나. 당신은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걸까…….

해시태그

 
@드림주와 드림캐가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가만히 있는다면 둘 중 먼저 시선을 피하는 쪽은 누구인가요?
보통은 모르간.
이카본의 눈은 요정안과 달라서, 결코 전부를 ‘있는 그대로’ 읽히지는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뱃속까지 뒤집어볼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히게 한다니 그를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로, 계속해서 들여다볼 수는 없는 편. 그리고 그녀의 눈은 그를 오롯하게 읽어내고 있어서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그녀로부터 무엇을 읽어냈는지 전부 알게 되어서……도 크다.
모르간의 눈이 물러나거든 으레 이카본이 뺨을 감싸곤, 인사를 나누듯 차분히 이마에서부터 콧잔등까지 차분히 입을 맞추다가 가만 눈을 감고 키스를 조르듯 고개를 수그려 그녀의 아래에 자리할 테다.
이제 키스해줘.

적폐 상아사과

 
1.
부케당탕이 드라이플라워 부케보다는 그때 그 시절의 부케라는 말로 번역되는 게 더 실제 용례에 가깝다는 글을 읽고… 부케당탕 잉크처럼 분홍색에 가까운 연보라색 수국 받고 이카본이랑 손 맞잡고 미뉴에트 춰주는 모르간 보고 싶다.
그냥 요새는 부케당탕이란 말만 보면 모르간이 떠올라

2.
모르간 손등 위에 잇자국 내고 싶다 장갑 벗기면 보이는 선명한 어금니 자국
하필 어금니라니 정말로 잡아먹기라도 할 셈이었는지

3.
이카본이 모르간 머리를 쓰다듬는다면… 역시 모르간 머리 감겨줬을 때가 아닐까.
모르간은 머리가 무척 기니까 마를 때까지 만져주고 나서 머리 빗겨주다가 괜히 쓰다듬곤 했을 것 같다. 파우더룸에 단정히 앉은 모르간, 브러쉬로 살살 머리를 빗겨주다가 거울 너머로 눈을 마주치곤 제풀에 웃음을 터뜨리는 이카본 같은 이미지 생각나기도 하고. 고개를 젖히곤 까르르 소리가 날 만큼 경쾌하게 웃는 그 어린 애인을 물끄러미 보다가, 모르간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만다. 그녀의 머리가 다 마를 때까지 아직 제대로 손질하지도 않아 부스스하고 헝클어진 이카본의 머리 탓에.
그가 지난 평생 늘 시종들의 시중에 익숙해져서 손수 머리를 말려본 일도 빗어본 일도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문득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카본은 대수롭잖게 굽슬거리는 머리칼을 넘기더니 모르간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다가 머리 위에 입맞추며 소근인다.
보기 별로니? 곧 빗을게.
그럴 적이면 모르간은 마지못해 웃고, 마지못해 한숨 쉰다. 빗겨달란 이야기는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응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