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류사 브리튼 (SEP, 2023)

유년의 뜰

 

1.
아닌 게 아니라 범몰간 출생 시절 이카본이 우서의 충신인 삼십대 초반 정도였다면 이미 수도원 유폐 때 목숨 내놓고 한낱 갓난아이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이의 미래를 망치지 마옵시고 이성적으로 판단을 어쩌고 하다 목이 달아났을 것임
1-1.
어…? 근데 갑자기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은 갓난아이나 죽은 찬탈자의 혼령이 내린 세례 따위가 아니라고 박박 우기다 갓난아이 범몰간 기르게 된 이카본 같은 건 좀 생각남
1-2.
아 그런데 이카본은 확실히 혼돈악이 교육의 역할로 선해진 케이스인데 이카본이 온 정성 다해 키운 모르간이 정성이 무색하게 그래도 대마로 자라면 진짜 웃기긴 하겠다
헉
양귀비꽃 모르간(급기야)

2.
이카본이 어렸을 때 병약했던 건… 이카본 어머니를 좀 닮지 않았을까. 한정없이 사랑받고 한정없이, 그 자신조차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하는… 상황에 빠지게 하는.
시름시름하며 단 하나뿐인 아들의 손을 잡고, 얘야, 나는 너 하나 낳는 데에도 목숨을 걸어야 했단다……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이카본의 평생 어떤 의무감, 어떤… 부채감을 안겼을 것이다. 목덜미를 안는 어머니의 품은… 어머니는 나를 정말로 사랑하지만 때로는 숨이 막히는 것 같다……는 생각.
이카본의 마더이슈는 그런 성질로 존재하는데 사실, 크게 병적인 이슈는 아니랄지🤔 그냥 때때로… 정리되지 않은 감정으로 마음에 얹힐 것 같다. 마더이슈 있는데 마마보이 안 될 만큼 자아 분명한 외아들 소재 좋아해서 아마…? 모르간이 알더라도 중요치 않게 넘어가지 않았으려나

 

 

신처럼 걷고 계명성처럼 말하는 이에게

 

1.
모르간은, 물론 운명이란 것을 믿는 사상이 보편적인 중세 시기의 사람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범인류사의 모르간은 운명을 믿기 싫어도 믿었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보다는 운명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딴 불합리와 자신의 인생에 처박힌 저주가 운명이 아니라 모든 현세와 살아 숨 쉬는 인간의 인과와 악의와 의도가 빚어낸 결과물이라니. 그렇게 믿느니 차라리 자신의 생이 운명지어진 것이라고 믿는 게 덜 비참하지 않을까?
그 모르간에게 운명이란 존재치 않으며 모든 인생은 각자가 꾸려나가는 것이라고 하는…… 모르간이 보기엔 축복받은 운명의 산물이나 다름없는 ‘천성이 모르간과 다름없이 악하게 태어나 사랑받으며 선성을 품고 절대선의 이룩을 꿈꾸며 자란’ 남자의 존재
정말 혐오의 대상 그 자체일 것이다
누구보다도 이카본의 존재가 모르간에게는 운명의 실존을 증거하는 것인데

2.
범인류사의 모르간 어느 날엔가 턱 괸 채 먼발치에서 이카본 바라보면서 네 사랑을 믿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사랑에 빠지게 한 나의 아름다움을 믿지……라고 혼자 중얼거린 적 있을 것이라 100% 믿음

3.
범인류사의 모르간은 이카본을 지나치게 도덕주의적이고 콧대 높으며 까탈스럽기 그지없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이문대의 모르간도, 사실은 그리 생각하지만, 결코 그렇게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건 정확하게 자기 사람에게 무른 모르간이 이카본을 자기 사람이라 생각하느냐 생각하지 않느냐의 차이.

 

 

상아탑의 현자로부터

 

1.
이문대의 모르간은 이카본의 남성성 따위 본인부터가 그리 소중히 여기지 않으므로 별로 좋아하지도 않겠지만… 범인류사 모르간의 기억 속에서 본 사열식에서 본 이카본의 드문 ‘중세 지휘관’다운 모습은 좀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갑주 무게는 감당할 수 없으니 입지 못할 테고 예복에 허리에는 예식용 칼을 찬 말쑥한 남자. 드물게도 냉엄한 얼굴을 하고서. 사열식 시작 전까지 기댈 곳이 필요한지 팔을 허리에 찬 칼에 올려둔 채 손끝으로는 폼멜만 만지작거린다. 검의 구색만 갖춘 몹시도 가느다랗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듯 말끔한 그것의 폼멜은 왜 그리도 장식적이었는지.
상아탑에 틀어박혀 있을 때와 정반대라 제법 근사한 모습이라고 이몰간은 생각하지만 애석하게도 사열식이 시작되고 이카본이 다른 기사들처럼 아서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은 기억 속에 없다. 범인류사의 모르간이 보지 않은 것을 그녀가 볼 수는 없는 일이다.
1-1.
하지만 범몰간이 외면한 그 ‘아서 왕’이랑 이카본의 대화는 실제 이랬겠지
🕰️ - 🥲 무거워… 역시 다음엔 쇠를 좀 빼서 무게를 줄여달라고 해야겠어.
⚔️ - 이카본. 거기서 쇠를 더 빼면 속을 다 파달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을 텐데.
🕰️ - 차고 있는 것만으로도 허리가 쑤셔…….
⚔️ - 흠. (도야가오!) 의장대에 넣을 만한 얼굴이란 말은 취소해야겠군.
1-2.
이몰간 붕락엔딩 났을 때 나중에 추밀원장 이카본 사열식에서 칼 채워놨더니 끝나고 이카본이 칼 풀면서 허리 뻐근하고 쑤신다고 칭얼거려서 범몰간이 그 기억 안 남겨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급기야)

2.
이카본이 잘 쳐줘야 환령 수준이고 영령으로 등록되지 않은 이유는 일단 영령의 좌에서 죽은 것으로 정의되지 않아서가(사유: 어쨌든 혼이 깃들 육신이 무기물로나마 존재함) 크지만 그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전성기가 문제가 있기 때문.
30대 중반 퀘스팅비스트랑 멀린 부재 이후로 카멜롯 입성해 카멜롯 현자들의 수장으로 일하다가 캄란 이후 상아탑에 브리튼 유민들 보호처리하던 시기가 전성기라면 지명도 제로 수준이나마 영령으로 소환될 가능성이 있지만…… 이카본이 생각하는 자신의 전성기는 카멜롯 체제의 전성기인 20대 중후반이라서…….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카본이 생각하는 자신의 전성기는 원탁의 기사들과 온 브리튼의 인간 마술사들이 한창 모험을 떠나던 시기, 기사들의 모험담을 완성시키는 조언자의 시기인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때는 상아탑에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고 이따금 아르토리아가 부를 때나 찾아오던 시기라 기록에 남은 것이 없으니 부를 것도 없는 사람이 된 거지. 노움 칼데아에서 새 육신을 구성하고 되살아난 이카본이 30대 중반이 아니라 20대 중반의 육신인 이유도 그래서고.
헉 갑자기 각자 ‘자신의 전성기’라고 생각한 시점인 카멜롯 전성기 때 이카본이랑 캄란 때 범인류사 모르간 성배전쟁에 소환된 거 보고 싶다 이카본에게는 손절한 시기의 모르간이었으며 모르간에게는 그녀 자신이 직접 완벽하게 싱그럽던 시절이라 말한 이카본.

3.
사실 이카본은 란슬롯과 기네비어의 관계를 예전부터 짐작하고 있었을 것 같다. 어렴풋이, 보답 없을 사랑을 하는 이가 어떤 눈을 하는지 아는 사람이 짐작할 종류의, 그냥…… 아. 두 사람은 사랑을 하는구나. 같은. 나는 아르토리아가 무의식중에는… 그러니까 정말 꿈에도 몰랐으리라고는 생각 안 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종종 아르토리아가 버밀리온으로 올 때, 한 번은 이렇게 말한 적 있지 않았을까. 마치 왕실의 예법일랑 잊어버린 사람처럼, 친구의 부인에게 으레 차리는 범절조차 부여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사람처럼.
나는 네 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가. 그럼 나는 더 이상 말 않겠다.
그리고 그뿐인 것처럼, 두 번 다시 이카본은 기네비어의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 꺼내지 않고 아르토리아 또한 듣지 못한 것처럼 굴겠지. 기네비어의 이야기가 다시 화두로 올라오게 된, 카멜롯의 전쟁 때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 드림캐를 제외하고 드림주와 제일 친한 캐릭터는 누군가요? 어떻게 친해졌고 어떤 점이 맞았나요?
어쩔 도리 없게도, 지극히 당연하게도, 둘도 없는 벗은 아르토리아.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며 자라온데다 익명의 인간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헌신하고 이끈다는 이상이 서로 맞아서, 가치관의 사소한 다름 정도야 고유성으로 인지하고 존중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그 이상은, 그들이 함께 벗으로 보낸 시간은 사랑조차 저버리고 결국 카멜롯으로 발을 들여놓게 할 만큼 소중했을 것이다.
아르토리아는 마음 깊은 곳에서 본디 이카본은 모르간의 것이어야 했으리라 생각했을 것만 같지만……. 그것도 멀린이 떠날 무렵, 그를 사랑했다던 것과 같은 고백처럼, 정확하게 닿지는 못한 말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