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대 (AUG, 2023)

두 사람의 성질

 

1.
모르간에게 이카본의 백일하에 드러나도록 내놓은 얼굴이나 후드 달리지 않은 케이프 같은 것은 정말로 이카본이란 사람을 그대로 나타내는 형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사철 시시때때로 가벼운 비가 내리곤 하던 브리튼 기후, 이동이 잦았을 카멜롯 멤버 같은 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때 아닌 비 맞을 걱정을 생전 할 이유가 없는 도련님 티가 난다고, 모르간은 생각했을 것이다. 버밀리온의 이카본 시절에도 그는 그런 후드 같은 것은 쓰지 않았겠지… 설혹 원탁들과 동행해 말을 타야 했을 때 비가 오거든 아마 이카본은 그냥 맞았을 것이다. 그렇게 한두 번 정도 비 맞는 것, 유쾌하게 웃고 지나갈 해프닝이 될 테니까.
그런데 그래서 그의 굽슬이는 머리칼을 손가락에 감으며 모르간은 제딴엔 되게 이카본을 생각하는… 나름대로 애인한테 던지는 플러팅이랍시고 평생 볕 볼 일 없이 살게 해줄까? 이런 말이나 해서 이카본 o.O할 것 같아 본디 말이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

2.
이카본은 불쑥 모르간 살갗에 손 대는 걸 좋아한다. 그냥 별다른 성적인 함의 없이도, 문득 생각나서 불쑥. 은어처럼 차고, 매끄럽고, 연약해서 닿으면 쉬이 흔적이 남고, 발긋하게 달아오르는 그의 연인이 마냥 좋아서. 손끝으로 살그머니 쓸어내리고 죽 그으면, 따라서 아주 조금만 힘이 들어가 얕게만 패었다가 금세 돌아오는 흰 살결을 보다가 이내는 고개를 수그리며 어깨에 코를 묻는다.
모르간은 자주, 시프레를 기조로 한 향수를 뿌린다. 그 향을 두고 이미지 조향이라고들 한다. 이카본도 모르간도 향에 이름붙게 한 키프로스 섬에 가본 적 없다. 아마 앞으로도 가볼 일은 요원할 것이다. 다만 아득한 이미지만을 몽상하면서 뿌린, 서늘하고 습윤한 듯한 가라앉은 향 가장 아래에는 관능적인 화이트머스크가 자리하고 있겠지. 낮에 뿌린 향수의 노트가 모조리 날아간 연후에, 마지막으로 남은 희미한 머스크 잔향이 남은 몸을 끌어안고 이카본은 잠을 청한다. 사랑해 마지않는 그의 연인과 함께.

3.
모르간 필체는 왠지 가늘고 폭이 좁은 필체일 것 같다. 힘 주고 쓰지 않아 가는 것도 맞지만 고르는 펜촉 자체를 굉장히 가는 것들만 골라 쓸 것 같은 느낌이랄까. 그런데 묘하게 그런 ‘필기체’인데 사람이 쓴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난달지… 분명히 펜으로 적은 글씨인데 선의 균일함이나 모양새가 마치 조판이라도 해 찍어낸 것 같다는 인상이 있을 것 같다.
반대로 이카본 필체는 펜촉부터도 그보다 조금 두꺼운 것을 고르고 헤타레한 것치고 정말로 정갈하고 또박또박 적은 느낌이 있을 듯. 서명할 때랑 특정 철자 빼면 거의 필기체 안 쓰고 인쇄체 쓰는데 잠깐 보면 와… 인간 워드프로세서야? 같은 생각 드는데 어디서 힘 줬는지 딱 보이는 선 두께의 변화며 폭 차이가 사람이 썼다는 티 팍 날 것 같다.
3-1.
사실 모르간과 이카본 두 사람의 필체 차이는 단순한 취향이나 성격 차이도 차이지만 자신이 쓴 것이 남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얼마나 상정하며 살아왔느냐에 가까울 것 같다.
나는 범몰간은 문자를 남긴다면 거의 확실하게 자기만 볼 글을 썼고 이몰간도 자기 친서는 그나마 씨족장 몇이나 대사 중에서도 특정 몇몇만 보지 도통 읽는 이를 상정한 글은 잘 안 썼으리라 생각하는데 이카본은 생애 전체가 자기가 쓴 글은 쓰자마자 공공성을 지닌 것과 다름없는 사람이었으므로… 상아탑에 처박혀 살던 시기 학술적인 글도 그렇고 카멜롯 입성 후도 그렇고 기록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반쯤 ‘공문서화’의 동의어였던 사람이 남기는 글씨가 보이는 명료함은 대체 어느 정도이겠는가
3-2.
공문서의 남자 이카본 부리는 모르간 너무 보고 싶다... 의자에 뒷머리 기대고서 눈 감은 채로 받아적을 말 읊어주는 임금님 모르간

4.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이카본이 생각하는 모르간이란 사람의 성질은 백금이다. 그녀의 머리색을 두고도 은발이라고 하기보다는 바래지 않을 것이 바랜 듯한, 그러나 영영 바래지 않을 창백한 백금의 색이라고 서술하게 되니까.
금이라는 금속에 관해 먼저 이야기를 해볼까. 수 세기 동안 인간들은 금을 만들기를 소망했고, 실패했다.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장 쉽게 금을 만들 수 있는 금속이 금보다 더 희소한 백금임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결과다. 가장 희소하고, 진귀하고, 가장 금에 가깝지만 누구도 금으로 만들지 않는 것. 
그쯤 되면 하잘것없는 범인들의 눈에는 항상 은과, 화이트골드와 혼동되는 가장 드문 금속이 모르간이 아니라면 누구일까…… 싶어질 수밖에 없지 않나…
모르간 르 페이는 인간의 눈에 으레 은으로 보이고, 그리 보는 눈을 체념했으나, 오로지 현자만은 그것이 백금임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카본에게는 그녀가 진실로 금보다 귀하기 때문에.
4-1.
그러면서도 모르간에게 이카본이 자길 백금으로 보는 눈이라거나, ‘나는 어떤 면은, 당신 자신이 당신을 아는 것보다 더 당신을 잘 안다’ 따위의 말을 하는 게 소중한 지점이 그걸 들여다보고 해석하는 이카본의 눈이 요정안도 아니고 마안도 아니라는 지점이었으면 해…
그 어떤 신비와 마술에 기대지 않고 오로지 철저한 통찰과 이성으로 파악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모르간에게 이카본의 ‘백금’이라는 수사가 소중했다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5.
어느덧 이카본이 익숙해진 후엔 모르간이… 이카본이 뺨을 살그머니 쓰다듬으면 아주 조금만 입술이 열렸으면 좋겠다. 키스하려는 것처럼, 키스를 기다리는 것처럼 벌어지는 자그마한 입술.
그리고 정말로 어김없이 키스할 적이면 안도하는 듯이 긴장이 풀어지는 어깨… 같은 것.

6.
모르간의 손등에 키스하는 이카본
이카본은 정말이지 정성스럽게 그녀에게 입을 맞춘다. 손등에서 손가락을 잇는 불거진 관절, 손가락의 마디마디, 발목의 복사뼈 같던 손목의 뼈까지. 그는 입술로 살갗보다도 그녀의 견고한 골격을 가늠하고 욕심을 숨기지 못하고 손등 위에 제 입술을 누른다.
사천 년의 세월 동안 남았을 흉터나 싸움으로 박였을 굳은살 같은 것은 없다. 그녀는 치욕스러웠을 기만과 고통스러웠을 상실의 기억을 몸에 남겨두는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그러고도 이천 년 세월이 흘렀다. 이미 그의 입술에 닿는 것은 토네리코가 아닌 모르간이다. 오롯하게 매끄럽고, 오롯하게 그가 사랑해왔던, 이카본은 타인으로 구분하고 모르간 자신은 같은 사람이라 여기는 범인류사의 모르간과 꼭 같은 매끄럽고도 부드러운 살갗이다.
전해지는 애정에 육천 년은 삽시간에 쓸려내려간다. 모르간은 지난 육천 년 있었던 숱한 불면의 밤을 떠올린다. ……이것이 그인가. 이것이 유영하는, 그…….
차마 ‘그것’이라는 모호한 대명사에 명확하게 이름 붙이기도 전, 순종적인 연인은 눈치마저 빨라 그 자신의 입술과 틈 없이 맞물릴 입술을 찾는다. 이번에는 정중하지 못하고 느리지 않다. 들숨조차 삼켜버릴, 한낮의 정사처럼 은밀하고 숨가쁜 키스다.

7.
이카본의, 모르간‘들’을 향한 감정의 순서를 이문대의 모르간이 어느 날 알아주면 좋겠다……
범인류사의 모르간을 손절하고 났더니 이문대의 모르간을 사랑하게 된 게 아니라 그 모르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범인류사의 모르간을 마음으로부터 놓아주게 된 것이라고
젠장, 순서가 달라, 나는 그렇게 당신을 안일하게 사랑하는 게 아니야…… 훌쩍거리면서도 소년처럼 주워섬기는 말에 비로소 ‘그의 모르간’은 웃음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다

8.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이 모르간 르 페이의 형형한 푸른 눈을 보고 떠올리는 말은, 잔광
약간 인터뷰 느낌으로 말하고 싶다
그러니까 모르간은, 그러니까 당신은…… (그는 한숨을 쉬었다. 기도하듯 손을 모아 쥔 채 뜸을 들이고, 카메라에 시선을 맞춘다.) 잔광. 잔광 같은 눈을 보고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겠어.

9.
이문대의 모르간은 정제한 텍스트와 같은 사람이나 이카본에게 비문과 붉은 줄로 긋고 고친 교정부호 투성이의 초고를 주는 것으로 자기고백했고,
그 답으로 이카본은 자신의 브리튼 시절 생전에 대한 정직한 자기평가를…… 이미 끝내고선 유보한 척 이미 끝난 말에 코멘트하지 않고선 혼자만이 간직해왔다가 모르간에게 건넸다고 생각한다. 그가 내치고 정죄한 ‘범인류사의 모르간’ 앞 마지막 자신에 대한, 자기평가. 옳을지언정 그것이 자신이 이제껏 인간을 어떻게 생각해왔던 것인지…… 가장 숨기고 싶은 자기평가, 가장 진솔하게 붉은 줄로 오류를 분석해 적은 성적표를 건네면서.

10.
언어란 인간의 업, 인간사와 층위가 동등한 함의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필요하므로 쌓은 양과 깊이를 지닌다. 이카본은 대체로 그 말에 동의한다. 아니, 대체로, 가 아니라 전적으로 옳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르간을 향한 감정을 말할 때 번번이 사랑이라는 말조차 이카본은 의미가 얕다고 느낀다. 수 세기를 거듭하며 쌓은 언어의 함의, 언어의 폭 같은 것이 왜 그리도 협량한가…… 인간사와 동일하게도 축적된 사랑이라는 말조차 어째서 그의 감정을 모두 담기에는 비좁던가.
……그러니까, 이카본은 아직도 모르는 것이다. 모르간에게 이카본은, 이카본이라는 인간이 갖는 모든 총체적인 감정을 한 톨도 남김없이 모르간에게 주었음을. 그가 모르간에게 준 것은 사랑이 아니라 애정과 동경과 슬픔과 미움과 안타까움과 다시금 되돌아와 애정까지, 감정의 총체성임을. 송두리째 모르간에게 주었음을.

11.
헌데 그래도 모르간은 결국 ‘사랑받는 불신자’라고 표현되는 게 좋단 말이지…… 신을 믿는데도 그녀의 세계는 정말로 신이 죽어버린 세계라서 도통 믿을 수가 없는… 타의적인 불신자가 되어버린 자.
그리고 스스로 불신자이기를 택한 이에게 사랑받고, 운명이란 것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서 모르간에게만은 ‘당신의 그 실패하고 손에 넣지 못할 몰락이 예정된 인생이 당신의 운명이라면 나에게 할당된 단 하나의 운명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해두어라’고 말할 사람을 만나는 게 운명인 것이다

12.
사실 고대~중세인들의 현자는 멸망이 온다면 결국은 그 멸망을 받아들이는 걸 미덕으로 생각했고 그 틀 안에서 마지막까지 힘써 노력하는 것…이 페이트에서까지 유지는 된 것 같거든? 근데 이제 이건 당대의 사고관이랑 현대인의 사고관이랑 충돌한단 말임
그래서 저 중세인인 이카본은 이미 게티아 인류소각 때 한 번 게티아를 ‘존재치 말아야 할 것’ 또는 ‘옳지 않은 것’으로 규정했을 거란 말임… 그런데 거기서 한 술 더 떠서 이문대까지 갔으면 이카본은 내심 범인류사를 ‘과연 내가 지켜낸 가치가 있는 세계인가? 그건 아닌 듯 세계란 인리란 지나치게 오랫동안 존속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거고 붕락엔딩 때 너흰 악성으로 물든 땅보다도 존재 가치가 없고 그게 내가 현자로서 내린 결론이다 << 라는 걸 결국 천문대에 직접 말하는 게 엔딩이었을 거라고 얘기한 적 있단 말이야…
그 조형에서 이카본이 창작물이라 과장되고 극단화될 수 있는 ‘교만한 지식인’의 끝을 보여줬다고 얘기 들음 그가 현자이기에 지식인이기에 갖는 교만…

13.
모르간 손발 차가울 것 같은데 손으로 덥혀준다면 왜 항상 발을 쥐고 있는 생각이 드는지 잘 모르겠다
침대에 앉아 있는 모르간 발 손에 쥐고서 고개 숙이곤 발끝에 입 맞추고 싶은 오후 6시 46분

 

 

HAPPY END?

 

1.
내가 만약 집무실에서 졸다 깨는 모르간 같은 것이 보고 싶다 해
막상 그렇게 꾸벅꾸벅 쪽잠 잘 때는 의자에 머리 기대고 눈 감는데 잠 깰 때는 정작 책상에 팔 기대고 반쯤 엎드린 채 눈가 만지작거리면서 잠 깨겠지?
🕰️ - 내가 깨웠니?
🍎 - ……어차피 일어날 셈이었다.
🕰️ - ……음.
집무실에 들어오면서 잠든 거나 보려고 했더니, 애인은 야속하게도 도통 휴식을 몰라서. 모르간 무릎에 폭 안아올리고선 자기가 자리 차지하고 앉더니 더 자라고 하고 싶다. 기본적으로 임금님들 하는 공행정은 어디를 가나 만세일계(이럴 때 쓰는 말 아님)나 다름없으므로 이카본이 대신 처리해 넘기나 모르간이 처리하나 그게 그거…… 요정들만 필체가 다르다는 것만 알겠지

2.
두 사람 일상 바꿔서 지내는 이카본이랑 모르간
모르간 새벽 다섯 시에 자동으로 눈 떠져서 침대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한참동안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거릴 듯… 결국 침대에서 책 읽다가 아홉 시쯤에 일어나서 나오긴 하는데 홍차 우려서 홀짝거리고 있으면 하루가 이렇게 길었나 하는 생각부터 하지 않을까. 팬케이크며 생크림 같은 온갖 단 음식으로 아침 먹으라고 하니 아침부터 진심 무리… 할 것 같다. 시간이 이렇게 붕 뜬다고?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이거밖에 안 된다고? 진짜 24시간 내내 이 생각만 함
이카본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어찌어찌 옷은 갈아입고… 집무실까진 가는데… 계속 꾸벅꾸벅 졸아서 이러다 잘 것 같아서 사람 눈 있는 데 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서류철 바리바리 들고 옥좌로 가지 않으려나. 그런데 이제 거기서도 꾸벅꾸벅 졸다가 굴러떨어짐 응얽.
이카본의 모르간 체험 약 아침 여덟 시쯤 강제 종료되었습니다

3.
모르간의 두 손을 맞잡은 채 고개를 떨구는 이카본은, 생애 한 번도 하지 않았을 말을 하는 사람이 으레 그렇듯, 떨리는 입술을 연신 감쳐 물다가도 탄식하며 속삭인다. 그의 새 육신에 허락된 남은 수명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내 남은 평생을 모조리 사랑해보아야 당신의 육천 년 남짓한 인생에서 고작해야 팔십 년 정도만 채울 터인데…….
모르간은 예의 무감정한 얼굴 그대로 이카본을 올려다본다. 호리호리한 청년의 몸은 제아무리 고개를 수그린들 올려다볼 수밖에 없어서, 드리운 그림자 탓에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짐작할 수밖에 없대도 그 어린 애인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그녀는 훤히 알았다. 결국, 그녀는…… 그가 그랬던 것처럼 함께 탄식하며 대답하는 것이다.
내가 고민할 것조차 네가 떠안으려 드는구나…….
그녀는 조금 웃었고, 조금 울 것 같았다.

4.
모르간의 서늘한 손끝이 이카본의 뺨에 닿는 순간은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다…… 그냥, 어느 밤에 하염없이 심란하고 이유 없이 착잡해서 잠 못 이루고 무시로 젖어드는 고민에 책도 겨우 뒤적거리다 금세 덮어버리고 벽난로만 들여다보며 말을 아끼는 모르간이 창문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불현듯 고개 돌리며 쳐다보는 장면도 보고 싶어서.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어보면 잔뜩 비에 젖은 이카본이 싱그럽게 웃으면서 뻗은 나무 위에 서 있겠지.
🍎 - 이리 비가 오는데 왜 예까지 왔느냐.
🕰️ - 당신이 울고 있을 것 같아서.
🍎 - ……울고 있지 않다.
🕰️ - 정말로?
모르간은 대답하지 않겠지만, 항상, 그녀가 하지 않을 행동을 이카본은 할 것 같다고 말할 적이면 쓰린 탄식이 나와서. 결국 그를 안에 들이고선, 서늘한 손을 뻗어 따뜻한 그의 뺨을 어루만지면 좋겠다. 한밤중 빗속에 있었는데도 여전히 그녀의 손보다 높던 체온을.
그리고 이제 다음 날 추밀원장 여왕 침실에 들어가는 걸 못 봤는데 아침에 쟤가 여왕 침대에서 자고 있는 거 본 시종들만 수근수근이수근 되는 거임

5.
모르간은 이카본의 이름을 언제나 짧고 간결하게 불렀다. 악센트가 첫 음절에 들어갔고 파열음에서 종성까지 끊기는 곳 없이 매끈하게 입에 올렸다. 그러나 한순간, 어느 밤에, 이카본의 허리를 안으며 그녀는 속삭인다.
이카……본. 높낮이 없이, 그는 제 이름의 음절이 길어지는 듯했다. 숨처럼 아득하게 먼 음성으로, 마지막 음절이 멀어지는 듯이.

6.
좀 피로하고 컨디션 안 좋을 때 모르간 옆에서 돌보고 싶다. 그런데 이제 진짜로 돌보기보다는 침대에 물수건 들고 가면 색색거리면서 이마에 손 짚은 채 눈 감고 있다가 손 내밀면서 이리 다오. 라고 말하겠지만.
이카본은 모르간이 이리 다오. 라고 말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녀가 그의 앞에서 몹시도 어른처럼 구는 순간을 좋아한다. 반말로 나오는 순간, 어떤 발화의 가장 무의식적인 일상성을 좇게 되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범인류사의 모르간은, 이카본에게 그런 말투로 말한 적이 없었다. 나이 차이는 제법 났지만 언제고, 아마 이렇게 말했던가……. ‘이리 줘’.
그래서 이카본은 괜히 고집을 부리고 싶어져 슬그머니 모르간의 이마를 대신 짚는 것이다. 내가 할래. 연상의 애인이 그에게 못 이기는 척, 허락한 척 무방비한 응석을 부려도 좋을 구실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7.
다음주부터 날이 제법 선선해진다고 했는데 꼭 여름의 끝을 알리는 비가 와서. 이카본은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의 비를 좋아하는데 모르간은 겨울이 다 지나갈 무렵의 비를 좋아할 것 같다. 안개가 드리우고, 이윽고 눈 대신 함께 내리는 비. 사실은 안개가 드리울 때부터 드물게도 아주 조금 들뜬 티가 났으면.
🕰️ - 신기한 일이네. 항상 이런 때면 길이 진창이 되어서 싫어할 줄 알았어. 당신의 요정국에서도 전쟁은 잦았으니까.
🍎 - ……즐거워야지. 해동비가 아니냐. 겨우내 골머리 썩였던 일들도 해결되고…… 무얼 그리 보는 게냐?
🕰️ - 아니, 당신더러 겨울에 비견하는 자들이 많으니까. 겨울이 빨리 가기를 바라는 건 기분이 묘해서.
🍎 - 하. 과연 실없는 몽상가들이 할 말이로군. 겨울만 계속되기를 바랄 리 있겠느냐. 지상에 발 둔 이상 어느 위정자도 그리는 말 못할 것이다.

8.
이카본이 모르간이 그의 이름을 불러줄 때의 음성을 좋아하듯 모르간 또한 이카본이 그녀의 이름을 부를 때의 음성을 좋아한다면 좋겠다…
아침나절 그날 처음 입을 뗄 때 으레 그렇듯 아주 조금 잠긴 듯한 음성으로, 다정하게, 모르간, 하고 속삭이면 얼굴만 보고 나갈 셈으로 왔다면서 못 이기는 척 침대맡에 앉으며 머리칼을 쓸어주는 연상의 애인
정말로 얼굴만 본다면서 오늘 꿈은 꾸었는지, 꾸었다면 어땠는지, 깨고도 침대에서 는적거리는 것을 보니 너를 게으르게 하는 것은 나인 듯한 것 같지 않냐느니…… 그런 시시콜콜한 말을 꺼내게 하고 싶다

 

 

해시태그

 

#드림캐가_키스하는_법을_알려주겠다고_하면_드림주는
사실 모르간이 할 것 같지가 않은 말이라 놀라서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자그맣게 웃으면서 눈 감고선 가르쳐주세요, 아가씨. 할 것 같다
아가씨…? 하고 픽 웃는 모르간이나… 되도않는 존댓말 쓰게 되는 이카본 같은 것

#싸운_드림커플은_같이자는가_따로자는가
모르간 자기 잘 필요 없으니까 한숨 쉬면서 자리 피해주겠다고 일어났는데 이카본이 베개 끌어안고 찾아와서 울먹거리면서 자기가 잘못했으니까 같이 자면 안 되냐고 함
근데 싸운 거 이카본이 억울할 만한 일이면 웃기겠당

@드림은 캐릭터의 결핍을 충족시켜주고 싶다는 욕망과 캐릭터의 결핍이 되고 싶다는 욕망으로 갈린다고
그러므로 함께 돌아갑시다, 우리들의 유배지로
…………라는 말을, 손을 맞잡고 낙원이나 카멜롯… 또는… 그들에게 있어 어떤 긍정성의 집합체인 장소를 일컬어서 말하는 어린 애인이 되고 싶다

@: 탐드 구몬 오늘의 숙제! 드림주는 드림캐가 밤에 안아주면 잘 수 있는가? 
얘는 진짜 그만 자라고 좀 해야 해
평소에도 자정 땡치면 몰관 꼮끄랑하고 열시 열한시까지 자다 깨는데 더 자라고 하면 새벽 다섯시마다 칼같이 꼼질꼼질 품에서 빠져나가는 모르간 이카본 수면과다장애 의심한다

@님들은 드림캐랑 드림주가 결국 어떤 관계가 되기를 바라시나요 둘의 서사가 완성됐을때 이런 관계였으면 한다 라는게 있는지
당신 아니면 아무도 필요 없고 당신이 행복하다면 나와 함께 있는 나날이라 행복하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라고, 울며 고백하는 상아탑의 현자에게 마침내 그와 같은 말을 돌려주게 되면서 사과섬을 떠나온 여왕…… 같은 것.
결국은 연인을 이야기할 때 ‘당신 아니면 아무도 필요 없고’라는 말이 되는 걸 바란다는 거야…… 나는 결국 당신만을 원해 

@만약에 드림캐 인연도가 초기화되면 어쩔거야? 예상치못한 일이잖아
요정국 들어온 이카본이 이문대 모르간 만났을 때 딱 이런 기분이었을 건데 뭐 그 정도 인연이면 차라리 초기화하고 새로 쌓는 게 낫지 않을까
허나 만약 이문대 모르간 인연도가 초기화되면… 묵념
그 정도 인연이라는 게 가벼운 연이었다는 말은 아니고……
악연 그 자체였잖아 이카본 혼자 짝사랑하고 범몰간은 이카본 개 싫어하고 개 미워하고 기만함 그냥 초기화하고 새로 쌓는 게 낫다

@드림주는 신의 존재를 믿는가
이카본은 과거 신이 존재했으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신은 신앙과 함께 가는 개념. 그들의 실재와는 무관한 것이다. 근본적으로 신이란 것을 믿을 수 없는 인간이었지만, 헤겔과 니체의 선언 이래로, 인간들이 더 이상 종교란 것에 의지하지 않는 이래로 신은 죽었다고 생각한다. 죽어 없어진 것이 어디 믿을 만한 것인가. 운명 또한 그렇다. 운명이 존재한다면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을 리 없다. 점잖게 스스로 불신자라고 말할 뿐. 
정작 그의 애인 모르간은 신도 믿고 운명도 믿는 운명론자겠지만.

@드림주랑 드림캐랑 얼굴 가까이하고 서로 눈 빤히 쳐다보고있으면 누가먼저 시선피하는지 알려주세요 
이카본과 모르간이 빤히 쳐다볼 때면, 사실… 이카본은 항상 모르간의 얼굴을 좋아하는 것 외에도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녀의 눈이 그리는 궤적, 내비치는 감정, 그리고 색소가 옅어 쉬이도 제 얼굴이 비쳐 그녀의 눈에 비치는 제 모습은 어떤 모습이고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키는지 알고 싶어하므로 눈을 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뜻 없이 빤히 쳐다보는 것 자체도 좋아하고…
그래서 아마 모르간이 결국 한참 만에야, ……무엇인가 하고픈 말이라도 있더냐고 물으면서 시선 피하는 걸 대신하겠지.

 

 

적폐 상아사과

 

1.
모르간 생머리인 거 너무 좋다… 그런데 본인은 비가 올 때면 몽실몽실해지는 이카본 곱슬머리 만지는 걸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2.
모르간이 평소 쓰는 향수는 화이트머스크 베이스로… 시프레 계통 향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반대로 샤워코롱은 딱 뿌리자마자 청량!씨원!휘발성짱!인 향이었으면 좋겠다. 그야 아침에 샤워하고 드레스룸 들어가기 전까지 잠 깰 겸 뿌리는 걸 테니까? 길어야 한 30분이면 다 날아가는 향이기도 하고.
이카본이랑 같은 침실에서 잔 날… 평소 같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서 준비하다가 애 깨워볼까 하고 침대맡에 앉아서 말없이 볼 토닥거렸는데 이카본이 으응…… 하고 돌아누워서 허…… 하는 모르간 같은 게 보고 싶다고. 그야 평소 이카본 침실에 들어갈 때는 이미 샤워코롱은 다 날아가고 예의 익숙한 향수 뿌린 후였을 테니까…….
그리고 나서 모르간 욕실에서 씻고 나오는 길에 모르간 샤워코롱 뿌려봤다가 아 이건가 되는 이카본

3.
모르간 키스하고 나서 이카본 입술에 자기 립 번진 거 슬 올려다보다가 엄지 끝으로 닦아주는 거 보고 싶다. 그런데 이카본 얼굴 빨개지더니 또 키스하려고 달려들어서 대체 어디서 버튼이 눌린 거야? 되는 모르간
그런 건 요정안 달고도 알 수가 없다

4.
모르간 생머리라 그런가… 머리 뒤에 땋머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옆머리쪽에 살짝 땋아서 머리장식 늘어뜨려주고 싶다
근데 이거 그…… 기마민족들 종종 이러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