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타로 ─ 세계의 끝

@kasaS2gaon님 타로

 

 

세계의 끝, 우리는 결말을 함께 볼 수 있을까?

 

1. 종말의 상황
종말이 바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진부하게도 하늘이 갈라지고 땅이 불타오르고 있네요. 어쩌면 당신의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을 받아들이는 당신이 그렇다고 한다면, 그게 정답 아닐까요? 당신은, 우리는 언젠가 이 때가 올 거라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행했던 모든 죄가 심판 받는 그 날이 성큼 다가오고 말았네요. 우리는 악한 자였고 그 탓에 앞으로의 삶을 빼앗겼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기에 살아갈 가치가 없는 것이죠. 살아왔던, 걸어왔던 모든 길을 철저히 부정당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당신은 한낱 죄인이 되어 하늘에서 떨어지는 심판을 기다리면 됩니다. 그게 전부예요. 우리의 종말은 이토록 하찮고 보잘 것 없습니다.
이카본은 유유자적 여유로워 보이네요. 그는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달래주면서, 괜찮을 거라고 속삭입니다. 아무것도 아닐 거라고 하네요. 이카본은 그런 사람이니까요. 불안에 떠는 이들을 찾아가 이카본은 우리가 태어났던 그 때를 기억하냐고 물어볼 것 같습니다. 갓 태어난 우리는 눈을 감으면 세계가 끝나는 줄 알아 무서워서 울었다고 말이죠. 이카본은 지금의 이것은 눈을 감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해줍니다. 그저 다른 사람이 강제로 눈꺼풀을 내리게 하는 것이지, 결코 멸망이 아니라고 말이죠.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요?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들은 이카본의 말을 듣고 조금 덜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이카본의 속은 영 말이 아닙니다. 그는 아직도 고민하고 저울질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이게 정말로 끝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달래주어 잠깐이라도 두려움을 덜게 해주는 게 옳은 것인지. 그는 고민하면서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다정한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닐지도 몰라요. 멸망 그 이후에도 세상은 이어지니까요. 하지만 그게, 이 사람들의 세상이라는 건 아니죠. 잔혹한 진실을 말해주어 그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하는지 아니면..., 정말로 이대로 꿈 속에서 안식을 맞게 해주어야 하는지. 이카본은 결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르간은 태평합니다. 그는 불이 쏟아지는 하늘 아래에서 제 업무를 다 하고 있어요. 그는 불안해하는 국민들을 성으로 불러오고, 누군가가 두려움에 못 이겨 발광하면 그것을 제압하고, 배고프다고 우는 아이에게 먹을 것을 줍니다. 그는 자신의 일을 다 하고 있어요. 그것이 지배자의, 여왕의 책무입니다. 모르간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따위 신경쓰지 않고 서류 하나를 더 볼 것 같군요. 이카본에게 흘러 들어온 범인류사의 책을 가져다 주는 것도 그 일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모르간은 이카본에게 찾아가 직접 책을 건네줄 것 같아요. 그리고 너무나 태연하게 이카본의 앞 의자에 앉습니다. 둘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할 거 같아요. 하늘에서 불의 비가 내리고 있는데, 둘은 홍차나 마시고 있습니다.
이런 날이 올 줄 모르간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이 날을 생각하며,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모르간이 어떤 짓을 하더라도 멸망은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돌로 지붕을 만들어 쏟아지는 불을 피할까요? 그러면 하늘에서 치솟는 저 불줄기는 어떻게 할까요? 모르간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 긴 시간동안 모르간은 머릿속에서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고, 최선을 다해 발버둥쳤지만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모르간은 마침내 닥친 종말에 태연할 수 있었어요.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 자신의 왕국은 이미 가루가 된 지 오래였고, 모르간은 매번 그 가루를 모아 새 왕국을 지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똑같이 하면 됩니다. 차라리 멸망해버리는 게 빨라요. 그리고, 그 잿더미를 뒤져 모르간은 다시 왕국을 세울 것입니다.

2. 모르간의 시점
모르간의 마음. 그는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있는 걸까요? 그는 어떤 마음으로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뒤로하고 있나요. 이제 별조차 보이지 않는 잿더미의 하늘, 그곳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별인 모르간. 모르간은 이카본을 보면서 웃습니다. 희미한 그 웃음은 새벽녘의 별처럼 은은하게 빛나면서도 아름다워요. 모르간은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모르간은 먼저 떠나야만 해요. 여왕이니까요. 먼저 떠나서, 백성들이 지낼 수 있을 만한 곳을 찾고, 그곳에 왕국을 지어야죠. 그래야 그들이 언제 돌아오든 따스하게 안아줄 수 있죠. 그러기 위해 모르간은 떠나야만 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너와 함께 죽겠노라고 모르간은 이카본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먼 길을, 왕국을 세운다는 그 어려운 일을, 이카본 네가 따라와 해주리라 믿고 있으니까.
2-1. 이카본을 죽인 후 따라 죽는다
모르간은 이카본을 죽여 그를 먼저 보내기로 합니다. 정말로 미안하고 슬픈 이야기지만. (미안해하지 않을 수도, 슬퍼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요.) 모르간은 이카본에게 많은 것을 떠넘기려고 하고 있어요. 하지만 오직 이카본만이 해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모르간은 이카본이 아니면, 먼저 죽음 이후의 세계로 넘어가서 땅을 고르고 성을 세울 수 없다는 걸 아니까요. 그의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다정한 그입니다, 다른 존재들을 위해서라고 말한다면 못이기는 척 해주지 않을까요? 당신은 영웅이 되는 겁니다, 이카본. 현자 따위가 아니라, 한 나라를 세우고 구한, 말하자면 구국의 영웅이 되는 거예요. 모르간은 그따위 생각을 하며 이카본을 죽여야만 한다고 자신을 납득시킵니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모르간은 이카본을 구국의 영웅으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가 자신보다 더 위대해지고 칭송받는 일 따위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야만 해요, 그런 이유가 아니면 자신이 납득 할 수 없으니까. 정말로, 단순히... 추하게 죽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에 이카본이 그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런 정말 유치한 생각 때문에 이카본을 죽이려 한다니, 말도 안 되죠. 모르간은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정말은 같이 있어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그런 소망보다 아름답고 강인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싶다는 자존심이 더 커가지고, 모르간은 이카본을 먼저 죽입니다.
2-2. 함께 자살한다
모르간과 이카본은 종말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저 언젠가 찾아왔어야 할 일이 찾아왔을 뿐인, 단순한 현상입니다. 그러니 모르간은 당당합니다. 이카본 역시, 그 앞에서 웃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모르간은 이카본에게 먼저 손을 내밀 것 같아요. 우리가 먼저 가서 할 일이 많다고 말이죠. 누가 늦게 쫓아올 수 있으니 함께 가서 상대방을 뒤처진 상대방을 끌고 오자고, 모르간은 말합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우리는 말하죠. 하지만, 그 낙원을 만들기 위해 도망친다면 어떨까요? 모르간은 이카본에게 멸망 그 이후가 궁금하지 않냐며 유혹합니다. 그러니까 자신과 같이 죽어달라고 말이죠.
모르간은 자신만만합니다. 이카본과 함께 죽는다면, 정말로 죽음 그 이후로 뛰어넘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현자니까요. 분명 자신이 어디서 길을 잃어도, 어디선가 나타나서 바른 말을 해주겠죠. 우리는 이제 진정한 왕과 그 조언자의 관계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우리는 이제 둘이서 하나고, 그렇기에 우리는 정말 죽음조차 뛰어 넘어 낙원을 만들러 갈 수 있는 거예요. 이카본이 모르간의 손을 잡은 순간 모르간은 모든 것이 제 뜻대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세계가 모르간을 벌하였지만, 모르간은 무너지지 않았어요. 그 이후를 살아갈 겁니다. 이카본과 함께 말이죠. 그렇다면, 우선 먼저 우리, 불의 바다로 뛰어들어 이 육신을 먼저 태워버릴까요. 그렇게 둘은 함께 추락하여 불바다 속으로 떨어져 함께 죽습니다.
부연 : 모르간이 믿는 다음의 세계, 낙원에 관해서
그냥... 모르간이 생각하는 거예요 모르간은 정말로 다음 세계가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모르간 입장에서는 조금 신세계? 같은 느낌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로 모든 것이 리셋되어 다시 깨끗한 땅이 나타났듯... 불타는 땅의 불이 전부 꺼지면 다시 깨끗한 땅이 나타날 거라 믿는 느낌이에요.
대충 모르간은 이 땅 위에 자신들이 다시 태어날 거를 믿고 있지만, 이카본은 그 정도는 아닌...
사후 세계보다는 한참 후의 시간선에서 다시 태어나는... 환생? 개념을 믿는 느낌이네요
이카본은 우리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모르간은 강하게 믿고 있습니다.

3. 이카본의 시점
이카본의 마음. 그는 평온한 마음으로 떨어지는 불벼락을, 타오르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이카본의 마음을 흔들게 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걱정하는 그의 다정함조차 이카본을 괴롭히지는 못합니다. 그는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으니까요. 할 수 있는 것을 전부 다 해 후련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생각도 후회나 미련이 되지 못합니다. 이카본은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의 앞에 앉은 모르간을 바라보고 있어요. 모르간과 나누는 대화도 이게 마지막이 되겠군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카본은 모르간을 바라봅니다.이 평화로움, 이 고요함, 이 순간. 이카본은 이 순간을 사랑해요. 그는 약간 욕심을 내보기로 합니다. 이 평온함 속에서, 모르간이 그 어떤 고통 없이 잠들기를 바래요.
그래서 이카본은 모르간을 죽이기로, 혹은 그와 함께 죽기로 결심합니다. 모든 것은 모르간의 안식을 위해.
3-1. 함께 자살한다
이카본이 가진 것들중, 가장 가치 있는 것을 말해볼까요? 이 홍차도, 저 책도, 지금 입고 있는 옷도, 이카본이 걸치고 그의 손에 닿는 모든 것들에 가치가 없습니다. 이카본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그는 양손을 가볍게 하여 이곳에 나타났고, 이곳에서 제공받은 것들을 즐기면서 있었습니다. 그러니 명확하게 이카본의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은 존재하지 않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은 다릅니다. 이 평온한 세계는 이카본이 만든 세계. 그리고 모르간은 그 세계의 일부입니다. 그렇다면, 모르간을 이카본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되는 궤변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여기고 싶다고 이카본은 생각합니다. 이렇게 값진 것을 지금처럼 위험한 세계에 홀로 둘 수 없죠. 귀한 것을 귀한 곳에. 이카본은 모르간을 이 위험한 종말로부터 탈출시켜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내가 널 지킬 수 있기를. 이카본의 달콤한 사과 한 알, 그리고 열에 약하고 금이 가기 쉬운 유리구슬. 이카본은 모르간을 제 주머니에 넣어 가져각 싶은 거예요. 우리가 죽고 난 후 이 땅에는 새 사람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모르간의 유해를 발로 밟는 것을 이카본은 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잿가루로 모르간의 잿가루를 덮어, 자신이 모르간을 대신해 밟히고 싶다고 말이죠. 그렇다면 지금 모르간과 함께 죽어야겠군요. 그를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요. 지금까지 자신을 책임져 온 모르간에 대한 은혜 갚기이기도 합니다. 모르간, 이제는 감히 내가 널 지켜줄 수 있게 됐네. 그렇게 말하면서 이카본은 모르간을 데리고 테라스로 갑니다. 자, 함께 떨어질까요. 
3-2. 모르간을 죽인 후 따라 죽는다
모르간에게 이카본이 장난스럽게 말을 겁니다. 모르간, 우리가 이 땅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해? 모르간은 무얼 당연한 걸 묻냐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카본은 웃으면서 그렇구나, 그렇네, 같은 애매한 맞장구를 쳐줄 것 같아요. 이카본은 모르간을 바라봅니다. 우아하고 아름다우며 강인한, 고집불통인 여왕이 거기에 있죠. 이카본은 모르간에게 계속 말을 걸어요. 모르간, 그러면 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는 네가 너인 걸 어떻게 알지? 누구 하나는 남아서 네가 여왕이라는 걸 알아봐줘야 하지 않을까? 모르간은 잠깐 고민합니다. 어떻게 해야 이 땅에 자신이 돌아왔을 때, 모두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겠냐고 말이죠. 이카본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합니다. 내가 남을게. 내가 남아서, 네가 돌아오는 걸 기다릴게.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이카본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양심을 속이고 있어요. 이 땅에 자신들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 이카본은 모르간을 속였습니다. 순진한 모르간은 고개를 끄덕이네요. 이카본에게 모든 걸 맡긴다고 말하는 저 어리석음을 보십시오. 이카본은 끔찍한 기분을 느낍니다. 이카본이 모르간에게 다가갑니다. 모르간은 눈을 감고 제 목을 내밀 거 같아요. 이카본이 온 힘을 다해 모르간의 얇은 목을 부러뜨려 죽이면, 모르간은 저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축 늘어져 시체가 됩니다. 이카본은 모르간의 시체를 다정하게 바르게 해주면서... 테라스 너머 무너져내리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모르간은 희망 속에서 죽었지만 이카본은 절망 속에서 죽을 것입니다. 자신이 마지막에 한 거짓말이 너무나 수치수러워 이카본은 괴로워하다 결국 제 목을 칼로 찔러 자살합니다.

4. 세계는 왜 멸망하는가?
...타오르는 세계에도 의지가 있다면. 누군가가 이 세계가 그릇 되었다고 판단했다면. 그렇다면 그 누군가는 누구일까요? 어쩌면 이 세계에도 ‘신’이라는 게 있는 걸까요? 만약 있다고 하면 누구일까요? 그 누군가는 왜 이 세계에 안녕을 고했을까요.
모르간, 당신은 왜 그랬나요?
모르간은 수없이 많은 선택지 중에서 항상 최선을 골라 지금의 왕국을 쌓아왔습니다. 단 한 순간도 모르간은 자신의 선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는 신이자 여왕, 여왕이자 신이니까요. 하지만 이카본과 만나고 만 것입니다... 모르간은 이카본과 만나서, 범인류사를 알게 되고,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던 그 수많은 선택지가 궁금해졌어요. 그 길로 나아갔다면 나의 브리튼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만약에 지금이 가장 최악의 모습이라면.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사랑하는 것들이 고통받고 있다면. 그런 생각이 들어서, 모르간은 ‘만약’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모르간의 강인한 정신에 생긴 아주 작은 의문은 곧 세계를 흔들었어요. 모르간을 의심하게 만든 세계는 그 자체로 죄입니다. 감히 신이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지게 했으니까요. 그 탓에 모르간은 이 세계를 죄로 규정하고, 끝을 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