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내 겨울에는 고요히

　이카본은 늦잠을 자는 일이 익숙했다. 모르간의 표현이었으므로 그가 듣는다면 정정할 말이었다. 모르간에게는 늦잠이었고, 이카본에게는 평범한 수면이었다. 천문대에서는 의례히 이카본의 기상 시각에 관해 이문대와 미소특이점 출장이 예정된 때가 아니라면 참섭할 일이 아니라고 규정했고, 모르간에게는 요정기사 란슬롯의 기상 시각과 그리 다르지도 않으므로 참섭할 일이 아니라고 여겨졌다. 그러므로 노움 칼데아에서 새 육신을 입은 이후로 지금까지, 이카본의 수면에 관해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 노움 칼데아에서 조금 긴 수면 정도는 이견을 낼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실제로도, 모르간은 천문대의 소견과 의견이 같았다. 잠든 이카본의 곁에서 한가로이 머리칼을 만지작대며 아침 시간을 보내는 일과 올이 가는 고수머리라 언제나 세심하게 빗겨주지 않으면 엉키고 만다는 투정을 듣는 일 가운데서 불만을 찾을 방법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어느 쪽이건 그녀에게는 나쁘지 않았고, 어느 쪽이건 그녀에게는 한가로운 일에 지나지 않았다.
　모르간은 이카본의 머리맡에 앉은 채 가만히 블론드를 쓸어넘겼다. 손가락 새로 걸리는 머리칼조차 곰살가운 듯싶었다. 드러나는 이마, 부드러운 살갗과 평온하게 풀어진 긴장감을 말하는 듯한 눈썹 따위만으로도 저 자신의 성격을 모두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것만 같았다. 모르간의 손끝이 오랫동안 머리칼에 머물렀다.
　평소대로라면 한두 시간은 더 깨지 않을 터였으므로 조금 더 가까이 기대앉으려던 찰나, 침대 헤드 위 벽에 붙은 인터폰이 울렸다. 이것만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채 세 번이 울리기도 전 모르간은 응답 버튼을 눌렀다.

 

　“키르히아이젠 개인실입니다.”

 

　예상하지 않은 일에 음성은 여상하게 흘러나왔다. 언제고, 보더의 관제실에서 그녀와 그 아닌 다른 이가 들어야 할 화제를 두고 서로에게 경어를 사용할 때처럼 감정 없이 조용했다.
　그러나 그 탓이었을까. 음성이 송신된 인터폰 너머에서는 머뭇거리는 듯한 기색이 느껴졌다. 키르히아이젠의 공간을 서슴없이 입에 올리며 다른 사람이 인터폰을 받았다는 사실보다는 그녀의 경어 자체에 어떤 반응을 해야 좋을지 가늠하는 듯, 스피커에선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제법 지겨워질 만큼 뜸을 들인 후에야 스피커는 음성을 울렸다.

 

　“아, 역시 낯선걸! 나한테는 안 그래도 되는데~. 리츠카인 줄 알았어? 나인 거 몰라서였겠지! 몰랐지?”

 

　다 빈치였다. 모르간이 그곳에 있느냐는 것은 당연스럽게도, 질문거리조차 아니라는 듯, 무엇 때문에 놀랐는지 쪽이 더 드문 화제라는 듯 흘러나오는 말에 모르간은 가만히 이카본을 내려다보았다. 퍽 소란스러운 말에도 여전히 잠든 눈꺼풀을 보고 있자니 그녀 또한 전했던 말만큼이나 가벼운 한숨이 웃음과 섞여 나오고 말았다.
　……이런 소음에도 여전히 깨지 않는 거냐…… 때때로 언제 깨어야 하고 언제 잠들어도 괜찮은가를 모두 아는 듯해서 기분이 상할는지도 모르겠는데…… 늘어놓을 말들이 가뭇거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개개 풀어졌다. 머리칼을 매만지던 손끝이 가지런한 속눈썹으로 내려가자 인터폰에서는 재차 답을 촉구하는 대신 용건으로 넘어갔다.

　“이카본은 아직 자고 있지?”
　“음. 아무래도.”
　“그럼 30분 뒤에…… 9시 30분에 관제실에서 아침 회의가 갑자기 생겼으니까 오라고 전해주지 않겠어? 긴급한 일이니까!”

　대답도 채 하기 전 인터폰이 뚝 끊겼다. 아마, 다른 스태프나 후지마루 리츠카에게 인터폰을 돌리러 간 듯싶었다. 다시금 잠든 이의 숨소리마저 들릴 만큼 방 안이 고요해지고 나자, 모르간은 가만히 몸을 기울였다. 바스락대는 시트 소리와 함께 몸이 잠을 깨우던 여느 때처럼 가까워졌다.
　이카본은 여전히 잠에 빠진 채였다. 가웨인 경이었다면 버틸락의 부인이 그를 깨웠을 터였으나, 애석하게도 그는 낯선 귀부인의 방문을 허가하는 기사가 아니었고 모르간에게서 버틸락의 부인이 했던 말을 되풀이하는 장난질은 이미 한 번 지나간 지 오래였다. 무방비하고 잠에 취한 얼굴로 아침을 맞는 이를 흔들어 깨울 만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모르간은 가만히 이카본의 이마 위에 입을 맞추었다. 다시금 애석하게도 그는 입맞춤을 받아 깨어나는 미인조차 아니었다. 이제 와서는 잠을 깨어야 할 명목이란 명목을 모조리 피해가는 듯한 기분이라 모르간은 귓가에 속살거렸다.

 

　“들었느냐? 나는 그랑 카발로에게 네 일신상의 사유에 관해 구차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구나.”

 

　뒤늦게서야 는적대듯 뒤척이는 몸이 다시금 폐부 깊은 곳에서 웃음을 길어 올리게 했다. 이카본, 거듭해서 이름을 부를 적에 그는 슬그머니 눈꺼풀을 밀어 올리더니 품에 얼굴을 묻으며 소근였다. 습벽처럼 아주 오래된 투정이었다.

 

　“키스해서 깨워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