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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두 사람의 성질

 
1.
이카본은 키르히아이젠의 이름을 쓴 이후로 늘 독어와 가까이 지냈는데… 어느 날엔가는 모르간에게 그 시절 궁정식 불어로 말했을 것 같다.
아직 나의 사랑을 믿기 힘들거든, 내가 당신의 숙명이라 생각하라고.
모르간에게 그 말은, 정말이지 깊게 남아서, 파탈리테…라는 발음만을 내내 생각했으면 좋겠다. 팜므 파탈과 깊이도 닮아 있는 그 발음을.
숙명은 파멸과 얼마나 닮아 있는가.

2.
이카본이 실의의 정원…에 빠지면 아마 모르간 본인이 써야 제 효과가 나올 것 같은데(곰곰)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은 몹시 공적이며 몹시 사적인 사람이므로 그의 실의는 부모로부터 그 많은 사랑과 교육을 받고서도 범인류사 모르간처럼 자란 자신의 모습…이 아닐까.
그가 환멸을 느꼈을지언정 진심으로 위했던 원탁의 사람들을 웃으며 기망하고, 브리튼 전체를 너절한 유희에 불살라버리는 그 자신의 모습. 모르간 르 페이의 결코 매력적이지 못한 동족의 모습.
오로지 그것만이 그에게 실의를 안겨준다는 것을 증명받고선, 이문대 모르간은 마음 깊이 범인류사 모르간을 연민한다. 그리고 이해하고 마는 것이다.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이 ‘현자는 자기 자신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도 파멸하지 않는다’고 한 말을.

3.
이카본과 처음 연애…랄지 일종의 ‘허가’를 떨어뜨릴 적에 모르간은 퍽이나 복잡한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에인셀조차 읽기를 허락받지 못한 ‘온당한 브리튼’의 사람이었으므로, 필연적으로 말하지 못할 것만이 늘어가는 앞날이 눈에 보였기 때문일 테다.
그러니까 그 여자는, 그녀 자신의 요정안으로 타인을 보고선 진실과 본질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서 가장 진실된 것만을 요구하는 자 앞에서는 이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또 무슨 이유를 대어 내 마음을 속일까.
곤란하고도 사랑스럽게도.

4.
이카본의 머리는 남들이 관리해주는 게 짐짓 당연한 일처럼 자리 잡은 티가 나지 않을까. 올이 가늘고 굽슬거리는 머리칼은 언제나 욕실에서 나와 파우더룸에 자리를 잡고 앉거든 넘치는 사용인들이 달라붙어 바삐도 말리고 빗기고 세팅했고 이카본은 그것을 몹시 당연한 것처럼 여겼을 것이다. 그는 나면서는 영주의 외아들이었고, 살아서는 온 나라의 현자이며 영주였고, 죽는 날까지 그의 가르침을 간구하고 지도를 받고자 한 사람들로 영지가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므로.
한 번 부스스한 일이 없던 머리가 말썽인 것은 그가 노움 칼데아에서 부활했을 때부터였다. 아, 머리는 또 왜 이리 빨리 자라고, 어째서 말하지 않으면 모를 만큼 시간은 유장치 못하게 흐르는가?
그러니 모르간이 그를 빈객으로 접객하며 시종들을 붙여줄 적에, 그는 무심코 생각하고 만 것이다. 그 여자는 나를 이미 아는 것처럼—기실은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구는구나…… 라는 추측을.

5.
이카본은 모르간의 손상되지 않고 누락되지 않은 온전한 총체성을 원했고 거기서 하나라도 빠진다면—모르간이 숨기고자 한 범몰간과의 연계성 같은 것—그건 어떤 가치조차 없는 것임
그는 로마 군인들이 예수의 옷을 찢어 나누어 가졌듯 서 푼짜리 허설스러운 것으로 그녀를 대할 수 없었으므로

6.
이카본은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 인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동시에 감정과 충동에 매몰되어 옳은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은 인간이 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서로 모순된 것이 표리일체인 생물이 바로 인간이다.
많은 사람들은 잊고 있는 말이지만…… 사유하는 인간이라면, 모르간은 제법 그 말이 그럴듯하다고 느꼈다. 그가 감정에 휩쓸려 그녀에게 매달리는 순간. 그녀에게 옳지 않은 그 어떤 것도 허락지 않는 그의 냉막한 말이 떨어지는 순간. 그 전부가 모르간에게 생생하다.
모르간은 이카본이라는 인간을 사랑한다. 그리고 막연하게 느끼는 것이다. 그의 미네르바는 오직 이성과 계몽의 등불이라는 사실을. 어떤 인격신이 들어갈 자리도 어떤 무분별하고 충동적인 감정이 들어갈 자리도 그에게는 없다. 모르간은 조금 만족스럽다. 그 아래로 사족 같은 그녀의 의견을 더한다.
그래서 모르간의 남자인 것이다.

7.
이카본은 기본적으로 모르간의 개인적인 기록 같은 건 ‘보지 않는 게 당연한 예의’라고 정말 딱 잘라 말할 것 같지만 만약에 허락을 받고 모르간이 쓴 일기를 보게 된다면… 솔직히 말해서 지난 여왕력 이천 년 동안 그녀가 어떻게 지냈는지는 정말로 궁금해서 그 자리에 선 채 계속 페이지를 넘겨볼 것 같긴 하다.
이카본은 토네리코에 관해 궁금하지 않다. 비비안에 관해서도. 오직 그것이 ‘모르간’을 구성하는 것이기에 송두리째 알고 싶은 것이지 손톱만큼이라도 스스로 궁금해한 적이 없다. 하지만 모르간은? 모르간이 모르간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나날들의 기록은? 그건, 그에게 있어 가장 목말라하는 기록이 아닌가?
그러니 이카본은 딱 잘라서 말한 주제에 정말로 허가를 받아 볼 수 있게 된다면 아마 정말로 몰입해서 모르간이 제 머리를 쓰다듬을 때까지 그녀가 다가오는 것도 모르지 않을까… 싶다.
🍎 - 꼭 몰래 읽는 것처럼 화들짝 놀라는구나.
🕰️ - ……그건 아니지만…… 항상 나는 내 일기 같은 걸 남에게 보여준 적이 없어서…….
입 꾹. 하는 어린 애인 보고선 어깨에 머리 기대게 한 채로 일기장 읽어주는 모르간 보고 싶다(내가 조르고 싶다)

8.
이카본의 기억 속 모르간은 언제나 화를 내며 웃었다. 강렬하게 화를 내고 아찔하게 아름다운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생각했다. 누구도 그녀의 감정을 다 따라가지 못하리라.
이카본의 눈길 앞 모르간은 도통 표정이 없었다. 싱그러운 얼굴을 따라 매만지고, 가만히 뺨을 누르다가, 이카본은 엄지로 그녀의 입가를 가만히 쓸어올린다.
어찌 좀처럼 웃지를 않는지…….
모르간은 그제야 가만히 웃는다.
내 웃는다 해도 네가 아는 그 모르간과는 같이 웃지 않을 터인데.
그게 보고 싶어. 지금 이게…….

9.
이카본이랑 처음 연애할 무렵에… 모르간이 이카본이랑 침대에서 는적거릴 적에 희미하게 웃으면서 다정하게 대해주려무나. 요즈음은 마음이 약하니까. 라고 말하는 게 보고 싶다.
이때는 아직 이카본에게 범몰간 기억 있는 거 얘기 안 해준 때라서 ‘가벼운 연애’였던 시절이라 본심이 아닌 때의 말이었으면 좋겠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연애의 수행성…이란 성질로 인해 관습적으로 입에 올리는 순간이 보고 싶은 게 맞는 듯?
사실 진심 반 빈말 반으로 “Love me tender”라고 말하는 모르간은 정말로 사랑스럽고 이윽고는 그 말을 진심으로, 똑같은 표정으로 하게 되는 순간을 애타게 기다리는 게 맞음…


HAPPY END?

 
1.
추밀원 의장 이카본이 오로라를 처음 만났을 때 골머리를 썩인 쪽은 모르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카본은 오로라를 보고선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그녀가 사면받아 카멜롯에 다시 출입하게 된 것을 축하한다. 오로라 또한 예의 자애로운 얼굴 그대로 이카본에게 추밀원의 설립을 축하한다. 거기까지라면 좋았다. 한데 여왕 모르간의 근시는, 오로라 앞에서 돌아서지 않고 구태여 자극한 것이다. 다음에 국정회의에서 뵙게 된다면 좀 다른 모습이시기를 바랍니다. 아십니까?
그날 밤 모르간은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을 앉혀놓고 몇 번이나 어르고 달랬다. 그 여자를 보자마자 릴리트 같은 여자라고, 기분 나쁘다고 한 것은 너다. 왜 굳이 긁어부스럼을 만드는 거냐. 이카본은 모르간이 그렇게까지 핀치에 몰린 얼굴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 - 아십니까, 라고? 그 여자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게다. 알아도 기분 나빠할 것이고.
🕰️ - 기분 나쁘라고 한 말이었어.
🍎 - 이제껏 내가 그녀를 경계한 걸 보고도 어찌 그런 말을……
🕰️ - 내가 그 여자의 호감을 살 수는 없을 테니, 미리 말해두는 거야. 당신은 당신 스스로 말했지? 온 요정국이 내가 당신과 얼마나 긴밀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고. 그러니 못박아두는 거야. 그 긴밀한 사람은, 당신의 ‘우서 군’처럼 쉬이 독살당하지 않을 거라고.
모르간은 입을 다문다. 너는 정말로…… 섣불리 나오려던 말을 억지로 눌러 삼키고, 이내 고개를 돌린다. 과잉보호를 받는 건 정말이지 그녀 쪽이 아닌가. 그리고, 오로라의 위험성을 두려워하는 것 또한.

2.
역시 붕락엔딩 났을 땐 매일같이 그날 하루 저물고 이카본 방으로 찾아온 모르간 맞아주면서 오늘 하루 기분 나쁜 일 몇 번이나 있었냐고 묻고는 대답한 횟수만큼 꼭 끌어안고 볼에 뽀뽀해주는 걸로 저녁을 시작하고 싶다

3.
모르간은 때때로 꿈을 꾼다. 이따금과 때때로의 차이를, 오직 두 사람만이 아는 꿈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카본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드넓은 바다를 건너는 꿈을 꾼다. 굽이굽이 몰아치는 파도를 건너, 섬들을 지나, 푸른 대지에 닿고, 유실물이 떠온다는 그, 아득하고도 익숙하며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곳으로 닿는 꿈을.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다.
모르간은 모르간 스스로 이 섬 바깥의 모든 세상을 가라앉혔다. 그러니 그녀가 그런 꿈을 꾼다는 것을, 말한다면 이해할 사람은 오로지 저 바다 너머에서 그 긴 시간의 모래를 넘어 온 이카본 키르히아이젠뿐이겠지만, 말해선 안 된다는 사실만을 안다. 이카본은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므로. 그것을 감당할 것이니 가라앉힌 것이 아니냐고.

4.
모르간은 정말로 많이 그를 사랑하지만, 듣는 귀가 있을 곳에선 혀를 깨무는 일이 있대도 이카본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연회의 한가운데서, 사람들의 눈앞에서 맞잡은 손. 자연스럽게 맡기는 에스코트. 속살거리는 말과 드물게도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모든 왕들이 보이는 클리셰를 답습하는 상냥한 음성.
그러나 말은 하지 않는다.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아낀다고. 오로지 그 말은, 그녀를 그 누구와도 나누려 들지 않는 이카본 키르히아이젠만이 들을 것이라는 것처럼.
그것은 그녀의 말로 인해 면사받은 자들이 면사받을 것 없는 자를 용서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5.
비가 올 때면 카멜롯의 후원은 떨어진 꽃잎으로 바닥이 어수선하다. 꽃잎은 가득하고 때로 바람이 불 적에 떨어진 나뭇잎이 마르지 않은 채 길을 따라 놓인 돌 위를 뒹군다. 장미 덤불은 가시를 찾아볼 수 없이 발간 꽃잎으로 덮이고, 이내 꽃잎은 검은 구둣발 위로 나부끼다가 바람과 함께 날려간다.
여왕 모르간이 추밀원 의장 이카본을 위해 심도록 지시한 자색 장미도 예외는 아니다. 붉고 푸르고 감파른 것들이 제가끔 날뛰지 않고 함께 뒹굴며 흩어진다. 모르간은 회랑을 나와 일산을 받쳐 든 시종들과 함께 장미정원을 걷는다. 장미가 만개한 오월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때.
여왕의 눈에서, 추밀원장은 가시를 솎아내듯 손끝으로 덤불을 가만히 쓸다가 멀거니 떨어진 꽃잎들을 바라보는 모습이 피사체로 박제된다. 그는 살아 숨 쉬지만 오로지 여왕에게만 피사체가 된다. 추밀원장은 비를 맞고 있다. 여왕은 시종에게 고갯짓한다. 시종 가운데 하나가 바삐 일산을 받쳐 들고 이카본에게 달려간다. 이카본은 느리게 고개를 돌려 모르간에게 시선을 던진다. 그는 장미와 연인을 볼 적에 시선과 감정을 구분하지 않는다.
한참 만에야, 눈은 글을 적는다. 장미가 지니 수국이 필 차례다.

6.
모르간 발등에 키스하는 이카본 같은 거 보고 싶다.
잠들 무렵, 이카본과 이야기할 적에 모르간은 슬리퍼에서 발을 빼어 가만히 발끝을 내려다본다. 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만질 적에 둥글게 다듬은 손톱이 퍽 마음에 든다고 했다. 그리고 손끝을 제 입술로 가져가 입을 맞출 적에도 무척이나 그녀를 사랑스러워했다. 발끝도 그만큼이나 곱게 단장하거든, 그는 어김없이 사랑하고 아낄까.
모르간에게는 별다른 말이 없다. 침상에서 내려오는 것은 이카본이다. 모르간은 무심코 그에게 다시 요정안이 없는 것이 확실하냐고 물으려 한다. 까딱이는 엄지를 감싸쥔 이카본은 낮게 웃는다. 발바닥 안쪽 오목하게 들어간 곳을 장난스럽게 간질이고, 고개를 들어 그녀와 눈을 맞춘다.
🕰️ - 오늘도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쉬운 날인걸.
🍎 - 나를 항상 쉬이 읽는다 말하지만 네게만 쉬운 것을 왜 모를까.
🕰️ - ……아껴주면 좋겠는데. 기왕이면.
모르간은 한숨을 내쉰다. 그리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아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쩔 수 없이, 그녀는 고개를 수그려 이카본의 머리 위에 입을 맞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한은 다정하게. 그제야 이카본은 그녀의 손을 간지럽히듯 발을 간지럽히고, 사랑스럽게 애무하듯 아끼다가, 발등에 정중하게 입을 맞춘다. 누구라 해도 그녀에게 키스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듯.
 
7.
모르간은 좀 신선한 채소나 과일 좋아하니까+요정이라서... 분명하게 와인의 풍미를 즐기면서도 가끔 이카본이랑 소통 힘들어질 때가 있으면 좋겠다. 아마 추밀원 의장 이카본이랑 포도원 시찰 갈 때...?
🕰️  - 그곳에서 나는 아이스와인이 정말로 근사하다더군. 품질 관리가 엄격해서 생산량은 다른 포도원의 절반도 안 된다는데.
🍎 - ……포도원까지 가서 포도주를 마시겠다는 건가?
🕰️  - 난 평소 한 잔 정도만 마실 수 있지만, 포도원에 가니까 그 정도는 마시고 싶은 건데.
🍎 - (이해 안 간다는 얼굴!) ……우리는 포도원에서 갓 딴 포도를 맛볼 수 있을 텐데 어째서……? 와인이라고 해봐야, 신선한 포도를 으깨서 알코올이 생길 때까지 창고에 처박아둔 음료수에 지나지 않지 않으냐. 신선한 게 있는데 대체 무엇 때문에 오래된 것을 구태여 찾는지 모르겠구나. 더군다나 아이스 와인에 쓸 포도는 얼어버릴 때까지 따지도 않고 내버려둔 것인데.
모르간이 말할수록 이카본 얼굴 진짜 진심으로 😳 되면 웃기겠다
이게…… 진짜 나보다 더 와인을 자주 마시는 사람의 말이 맞아?


해시태그


@드림주/드림캐를 짝사랑하는 드림캐/드림주는 상대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나요? 아니면 끝까지 모르고 있길 바라나요?
🕰️ - 알아주면 어떻고 몰라주면 어떻나
🍎 - (후자가 실제 하고 싶은 말인 걸 생각하니 복장 터짐)

@드림주는 드림캐의 목소리를 좋아하나요?
나른하고 고요한, 그 여자의 투명한 목소리. 이카본은 그가 기억하던 시절의 모르간이 어떤 음성이었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언제나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쥐어짜낸 것이었고 긁어내어 던지는 비수였으며 그녀 자신을 찍어누르는, 낮은 음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였다. 이카본은 언제나 그 모르간의 목소리에 상처 받고 그 모르간의 목소리에 마음을 앓으며 추억했다. 꿈에선들 그 목소리를 잊을까.
어느덧 그에게 ‘나의 모르간’이 되어버린 그 목소리가 얼마나 고요하게 전해지는지 그는 똑똑히 기억하는 만큼 똑똑히 덧씌웠다.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언제나 정확한 어휘로 불분명한 것을 뭉개었으나 파문이 일듯 고요하고 섬약하게 그를 건드렸으므로. 살갗에서부터 혈관을 흐르는 피톨 하나까지 그의 모르간의 목소리에 가슴 설레어할 수밖에 없을 만큼 그는 사랑한다.
비단 목소리만을 좋아할 것 같은가?

@: 님들 드림주는 '자기야'를 영어로 뭐라고 하나요(darling, honey, sweetheart 등등) 구몬
My lovely
편지 쓸 때는 Beloved Morgan이라고 씀
첫 몇 주 동안은 들을 때마다 모르간 솔직히 진저리쳤을 것 같음
 
@드림캐가 어느날 갑자기 완전히 딴사람처럼 굴면 어떡할거임? 말투부터 취향 성격 성향까지 모두 바뀜... 드림주와의 기억에는 문제가 없는데 뭔가 지금까지의 관계를 흉내내려는 듯한 위화감이 듦
이게 이몰간 몸 탈취한 범몰간 아님?
그럼 뭐... 어쩌겠어... 굿해서 쫓아내야지...도 맞는데 범몰간이 왜 굳이 이카본을 극혐하는 마음을 누르고 흉내 내려고 하는지는 탐구하려고 할 듯

 

적폐 상아사과

 
1.
🍎 - 나는 요정국 브리튼의 왕이다.
🕰️ - 나는 당신한테 투표한 적이 없는데.
🍎 - 하, 그렇겠지. 너는 투표권이 없으니까.
 
2.
모르간은 이런 비 오는 저녁 발코니 난간에 기대어 턱을 괴고 바깥을 내다본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녀가 달가워하는 자세는 아니다. 그건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이 밖을 구경할 때 자주 보이던 자세였다.
나른하게 식은 파란 눈이 장미 정원을 훑는다. 비에 쫄딱 젖은 그녀의 애인이 젖은 머리를 넘기며 분주하게 걷고 있다. 이번에도 비가 올지 안 올지조차 생각지 않고 다른 것에 골몰하느라 젖었을 테다. 모르간은 가만히 제 아래를 걷는 이카본에게 손짓한다. 그가 그랬던 것처럼 소년 같은 겉멋을 비껴나지 못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일 따위는 없다. 반짝거리는 돔으로 비를 피하게 하거든, 이카본은 고개를 들어 모르간을 올려다본다. 그녀는 여전히 턱을 괴고 있다. 그러나 입매는 희미하게 웃음으로 뭉개진 채다.
🍎 - 오늘도 비를 맞고 계시나요, 상아탑의 현자님? 지금쯤이면 날씨를 예측하는 법을 배웠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바로 당신의 눈앞에.
🕰️  - 당신이 내게 존댓말을 쓰는 건 처음 보는군. 친애하는 여왕 폐하, 폐하께서는 모르겠지만 비를 맞는 건…… 썩 나쁜 기분이 아니랍니다. 제법 흥이 나죠.
🍎 - 흥이 난다? 요즘은 그 말을 물에 빠진 생쥐와 동의어로 쓰는 건가?
그만 이카본은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아, 그리고는, 소년처럼 뺨을 발그레하게 물들이며 모르간에게 묻고 마는 것이다. 건조하고 정갈한 여왕의 방을 향해서.
🕰️  - 그래서. 날 로미오처럼 초대해줄 생각이니?
🍎 - 어쩐다. 로미오는 물을 흘리지 않고 줄리엣의 방에 들어올 만큼의 예의를 갖추었는데.
🕰️  - 대신 내 이름은 영원히 당신 거야.
🍎 - ……하. 이 고상하고 단호한 남자 같으니라고. 내가 시종들에게 바닥이 왜 젖었는지 설명하게 만드는구나.

 

요정기사들이랑 상아탑의 남자랑


1.
🕰️ - 란슬롯 경도 오후에 출근하지.
🐉 - 난 아침에 약하니까~☺️
🕰️ - 나도 오후에 출근하지.
🐉 - 이카본도 늦게 일어나니까~☺️
🕰️ - 우리는 같은 편인 거야.
🐉 - 하지만 오로라는 안 좋아하잖아, 이카본?
🥔 - (오후 출근이고 자시고 어림군이랑 추밀원장이 같은 편이 아니면 문제가 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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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대 (JUN~JUL,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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