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대 (MAR~, 2025)

두 사람의 성질

 
1.
유사하게 우서가 있었음에도 이문대 이카본은 없던 이유는 범인류사의 이카본이 소각한 것이 “자신의 죽음”이고 허수의 바다에 잠들었기 때문에… 공상수가 뿌리내리는 순간에 영령의 좌에 달리 기록되지도 않고 허수의 바다에 잠들어 있는 시점이라 이문대에서 그걸 만들 수 없던 게 아니었을까

2.
그러니까 그 if의 요정국에서 여왕력 원년부터 천년동안 모르간이 남편인 양 데리고 살았던 그 남자를 요정국 요정들은 다들 ‘가시관의 암브로시오’라고만 알고 있고 크삭스클루트나 이카본이란 말은 그 누구도 알지 못하고 오직 모르간만 알고 있다는 게 좋은 거야 난…

3.
이름 관련한 딴소린데 요정국의 이카본이 없었던 건 늘 말하던 그 이유기도 하지만 ‘이카본’이란 이름 자체도 없었을 것 같음
인간목장에서 그런 이름의 인간이 출하됐을 때 여왕 모르간은 드물게도 경쾌하게 웃더니 누가 감히 이 땅에서 그런 이름을 가졌지? 라고 묻고 나선 [기록말소]

4.
이카본은 범인류사의 모르간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그녀 또한 혀를 깨문대도 이카본을 사랑한다고 말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남자 사랑하겠느냐고.
그러나 다만, 범인류사의 모르간에게 기억과 감정을 넘겨받은 이문대의 모르간만은 이카본에게 문득 의문을 품고, 묻게 되는 것이다. 모르간으로서.
그녀가 너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너의 말로 인해서 정신에 손상을 입고 파산에 이르렀을까.
너를 마음 깊이 미워했던 만큼, 아주 조금이나마 사랑하지 않았다면 과연 너의 말로써 정신의 파국을 맞았을까. 너와의 관계를 그리 모욕적으로 기억하고 있었을까.
햄릿이 거트루드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거트루드를 그리 힐난했을까.
아마, 그라면 왠지 이해할지도 모르고, 그런 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불러도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말할지도 모르는 말이지만.
4-1.
다만 범인류사의 모르간에게 있어 그녀가 순수하게 사랑만 받았던 상대를 한 사람만 꼽으라고 하면, 그녀는 그 많은 거짓말과 기만과 부정을 넘어서서 정말로 깔끔하게
그건 버밀리온공 이카본이지.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순수하게 그녀를 사랑만 했을 남자로서는 그가 첫 번째일 것이므로.
그런데 문제는 아마 범인류사의 모르간은 이카본에게 세상에 나 이상 너를 사랑하는 남자는 없으리라는 말을 들었다면 그를 기만하는 대신 그에게 그렇다면 너는 나를 왜 그리 훈계하느냐고 충돌했을 테고 그들의 관계는 조금 덜 최악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테지만, 정작 그때의 이카본은 그런 말은 몹시도 이기적인 말이기 때문에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카본이 상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문대의 모르간에 이르러서였으리라.

HAPPY END?

 
1.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이 요정국에 남았을 때 모르간은 행복할까. 아주 행복하고 아주 불행할 것이다. 추밀원 의장 이카본을 끌어안고 잠들 적에 여왕 모르간은 그녀의 일기에 적힐 말을 생각한다. 하루에도 수천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라고.
……어느 닫힌 미래 때문에.

해시태그

 
@드림캐가 드림주의 이름을 처음 불러본다면, 어떤 감정이 담길까
이문대의 모르간이 이카본의 이름을 처음 부르는 순간
이카본, 토네리코의 이름을 쓰던 시절에는 감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던 말이다. 한 번도 말하지 않았음에도 모르간의 기억은 숱하게 말했으므로, 입에 익은 이름이다. 모르간이 정말로, 이문대의 모르간이 실제로 이카본의 이름을 입 밖에 낸 순간은 그로부터 사천 년하고도 이천 년이 지나 천문대의 마술사들과 동행하며 콘월의 해안에 상륙했을 때다. 그를 보자마자 그녀의 입 밖으로 뛰쳐나와 소리가 되어버린 이름.
그리고 그녀는 그 소리에 원망도 허탈함도 설렘도 동경도 담기지 않았음에 마음 깊이 쓸쓸해한다. 그를 원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는 너무 늦게 왔다. 평생을 죽어 있었어야 마땅한데. 어째서 이제 와 그는 그녀의 앞에 실재하는 상대로 나타났는가.

적폐 상아사과

 
1.
모르간은 요정국의 손님이, 그녀의 것이 아닌 이카본이 그녀가 손수 붙여준 시종들과 퍽 친해졌다고 전해들었다. 조금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그 어느 날, 모르간이 이카본의 방을 찾아왔을 때 까르르 웃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오다가 방을 나서며 모르간에게 꾸벅 허리를 숙이는 시종들을 보자 결국 그녀는—그는 정말로 이것들에게 그리도 상냥하게 대한단 말인가?—차오르는 의구심을 억누를 수 없다.
테이블에서는 정갈하게 놓인 초콜릿색 쿠키 한 접시가 놓여 있고, 이카본은 아직 가시지 않은 웃음을 띤 채 모르간을 맞아들인다. 대체 무엇이 그리 신났던 것인지…… 그녀는 저 쿠키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모양새였음을 떠올린다. 카멜롯으로 들어오는 것의 전부는, 더군다나 그녀의 귀빈에게 가는 것은 모두 기억하지 못할 리 없다.
저건 무어냐? 날카롭게 물었을 적에 이카본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서도 난처하게 답한다. 모르는 게 좋을걸. 결코, 모범답안은 아니다. 적어도 그녀를 위해서라면.
이 부주의한 남자에게 요정들이 또 무슨 짓거리를 했으려고. 모르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설명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그것들은 재미로 독극물을 인간의 몸에 넣어보는 것들이라고? 그것들은 네 장난과 네 목숨의 경중을 모르는 것들이라고? 모르간이 선별한 시종인들 요정은 요정인 것을 그는 모른다.
머릿속에서 숱한 생각이 빙글빙글 돌아갈 적에, 이카본은 한숨을 내쉬더니 쿠키 하나를 들어 모르간의 입에 곧장 밀어 넣는다. ……초콜릿인 줄 알았는데, 몽땅 태워버린 탓에 쓰고 텁텁하고 쌉싸름하기까지 한 잿더미다. 그제야 이카본은 눈썹을 꿈틀거린다.
설명해야 하니? 시종들한테 쿠키를 직접 구워보라고 시켜봤다고.

토네리코

 
1.
약간 적폐인데 이몰간이 이카본 실제로 만난 날 밤에 진심 소주까고 싶어져서 혼자 방에서 옛날 토네리코 시절 기억들 들여다보는 거나 보고 싶다
그가 기억보다 형편없는 사람이길 바랐고, 기억이 미화되었음을 증명받았으면 차라리 나았으련만…… 그래도 그는 매력적이야. 라고 생각하는 토네리코
1-1.
‪근데 자 얘들아 들어봐‬
‪이미 구세주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범몰간이 넘겨준 이카본의 어떤 것도 영영 잠재워버리고 이천 년을 살았는데 이천 년 뒤에야 이카본 실물(죽었고, 인간이고, 이문대에 이문대 이카본 같은 거 없었음)이 갑자기 나타남‬
‪솔직히진심소주까고싶어지지않을까

2.
‬크삭스클루트가 있는 세계선의 요정국
라이넥이 모르간=토네리코를 100% 확신하지 못한 것도 당연한 것 같음
자기가 토네리코랑 여행할 때 저딴 놈 본 적도 없었는데 웬 가시관의 암브로시오??라는 이름?을 쓰는 애가 어느 날 모르간이 브리튼섬 천통할 때 같이 나타남 걔가 여왕 배우자 의전 다 떠맡음
이건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긴가민가하죠

3.
토네리코를 ‘선생이여’라고 부르던 소년 선지자 이카본이랑 토네리코에서 모르간이 된 모르간…이 LB6의 24절을 그대로 맞은 걸 생각하는데…
모르간의 주검을 내려다보며 그 소년 선지자는 조용히 말한다.
선생이여. 결국 죽음으로 돌아오길 거부했군.
선지자에게 그녀의 죽음이란 결국, 그녀는 사명을 죽음으로써, 죽음으로도 돌아가길 거부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요정기사들이랑 상아탑의 남자랑

1.
요정기사 세 사람을 전부 살려서 데려오고자 했던 건 죽음으로 받는,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받는 죄사함이라는 거… 나도 그렇고 이카본도 그렇고 약간… 안 믿어서도 맞는 것 같음
죄사함은 살아서 스스로에게 구하라…… 정도가 요정기사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 정도가 아닌가 싶네
정작 이카본 자신은 평생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오히려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사람이어야만 타인에게 스스로에게 받는 죄사함을 촉구할 수 있다고도 생각함(역설적인 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