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대 (APR, 2024)

두 사람의 성질

 
1.
문득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생각하는데 이카본은 이문대 모르간의 착장과 표정을 한 범인류사 모르간을…… 정말로 보는 순간 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침에 ^^* 하고 모르간 드레스룸 들어가는데 장갑 끼고 있는 모르간이랑 눈마주치자마자 얼굴 굳는 이카본… 같은 것.
당신 오크니의 왕비로군.
말하자마자 그녀는 일그러지듯 입꼬리를 구겨 웃으면서 한숨을 내쉰다. 도무지 저, 그 어떤 것도 깃들지 않은 눈을 속이려야 속일 수가 없다니. 그 말만으로 온전하게 ‘모르간’의 표정으로 돌아와 이카본의 옷깃을 쥐고 홱 끌어당기는 게 보고 싶다
그건 이제 쓸모를 다했으니 내 이름을 내 인생을 되찾기 위해 돌아왔노라고
뮤엑칼 그 가사 맞음
1-1.
이문대 모르간은 이카본이 몇 번을 말하고 또 말해야 “이카본이 범몰간 손절하고 공백기 중에 같은 사람인 이몰간한테 환승한 게 아니라 애초에 범몰간을 보내준 적 없었는데 이몰간을 사랑하게 돼서 범몰간 손절한 거임 순서가 다름”이란 걸 받아들이고 받아들인 후에도 정말로? 그런 일이 실재할 수 있는가? 그에게 자신이 그렇게 사랑할 만한 사람이었는가?로 때때로 번민하는데 범인류사 모르간은 이카본이 이몰간 때문에 자기 손절하고 마음에서 떠나보낸 거 그냥… 보자마자 알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 당연한 것을 왜 모를까… 킬킬거리고 자조적으로 씹어대다가도 이몰간이 목숨처럼 아낀 바반 시의 존재를 생각하면 당연한가? 라고 독백하는 범인류사 모르간
그러면서도 때때로 좀 짜증이 나네… 하게 되는 거야 이카본의 사랑이 기분 좋았던 적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게까지 헌신적으로 사랑받는 ‘모르간’이라니… 오로지 이카본이 연결되었을 때 범몰간은 이몰간을 가리켜 ‘그 여자’라고 말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2.
프랑스 쪽과 달리 독일 쪽에서 저술된 아서 왕 이야기에선 정말 모르간이 캐삭 수준으로 거의 등장을 안 하는데… 이카본이 부활 후에 하나 골라 만든 성씨가 독어권 성씨인 키르히아이젠이라는 것은 늘 많은 것을 시사한다고 생각한다
범몰간은 이카본의 마지막을 보지 않고 사과의 섬 아발론으로 떠났고 이카본은 언제나 이몰간에게 ‘당신의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이라고 말하는데 약간… 그것만은 범몰간이 갖지도 알지도 못하는 것이고 모르간이 손에 넣은 것 가운데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이라는 정체성은 어떤 연속성도 귀결도 지니지 않은 온전한 것임을 늘 확신시켜주고 싶어서
 
3.
타인의 진심을 듣는 것으로 아는 쪽은 모르간이다. 모르간과 산다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말이 담는 진심과 감정을 속속들이 들키는 것을 감내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이 추론하여 타인의 진심을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이다. 그는, 그로 인하여 모르간의 전부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언제나 천 번 만 번을 약속해줄까 소근이는 쪽이 이카본이고, 단 한 번만을 말할 테니 그 진심을 알아달라고 말하는 쪽은 모르간이다.
눈으로 본 진심을 보고도 믿을 수 없어 천 번 만 번을 약속해달라 말하는 것은, 그녀가 얼마나 그에게 진심을 열었는지 증거하는 것과 다름없으므로.

4.
이카본은 모르간이 오로라를 경계하고 그녀를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걸… 사실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별로 크게 신경 쓰진 않았을 것 같다. 보자마자 그냥 얼굴을 본 것만으로 릴리트 같은 여자라고 품평하기도 했거니와 뭐랄까… 예상될 만한 문제는 두렵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모드레드의 반란에서도 그의 폭력적인 행태는 두려워하지 않았다—그것이 예상 가능한 일이니까—는 맥락과 비슷한 느낌으로. 오로지 예상할 수 없으며 끝간 곳 없는 불길한 지점들만을 두려워했지만…서도…
요정향에 다녀와 성검단조를 마치고 혼자 돌아왔을 때 때 오로라가 그 난장을 쳐놓은 걸 보고 나서는 진짜 😳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지……

5.
이카본이 제 머리에 꽃을 달며 화사하게 웃을 적마다 모르간은 꽃이 얼마나 무심한지…… 라 말하고 싶은 것을 눌러 참는다. 비단 그녀의 머리에 다는 것이 아니라서 참는 것이 아니다. 그의 머리에 장식품처럼 자리한 꽃을 볼 때마다 항상 이카본은, 그와 가까운 성질을 지나치게 잘 안다고 느껴져서.
저 좋을대로 피어 아름답다가 채 일 년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다. 그리고 다시 태어난 것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라고 말할 적마다 그녀는 인간이 얼마나 한갓된 것인지 되뇐다. 얼마나 무심한가, 영속적인 것이 인지하는 타자의 방식을 정확하게 알고 있기에 동일하다고 여기라고 말하는 명징한 지성이란. 한없이 생성하고 소멸하는 요정조차 자신의 후계기를 온전한 동일함으로 규정 짓지 않았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모르간은 연극조로 방백하고 싶어진다. 아, 그녀가 사랑한 저 아름답고 상냥하므로 매정하고 무심한 코나투스여. 그러나 듣기를 바라는 자 없으므로, 진심이 호도되어도 거리낌 없으므로, 말을 눌러 참는 것이다.
5-1.
모르간이 바라보는 이카본……의 성질을 때로 구태여 코나투스라는 말로 언급할 적이면 이카본은 조금 울 듯한 얼굴로 웃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비록 그 말은 적확한 표현이지만,
내게는 당신도 결코 영속적인 게 아니야……

6.
이카본은 모르간에게 엄밀한 의미의 1인칭이 존재치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순결하며 단일하며 확연한 1인칭.
이카본에게 이카본 자신의 자아는 한 사람이다. 브리튼에 존재했던 서른다섯의 그라 해도, 스물여섯의 몸을 입고 되살아난들 근본적으로 사고를 이루는 체계와 살아 숨 쉬는 자로서 스스로를 규정하는 방식은 동일하다. 시간의 순서가 다만 엉켰을 뿐 그가 서른다섯의 과거로 돌아가도, 서른다섯의 그가 스물여섯의 지금으로 이끌려와도 결국 생각은 변치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한 사람이니까.
그러나 모르간은 어떻던가? 그녀가 비비안과 모르간의 이름으로 구별되어 호명되는 것은 어떤 모르간이라 해도 같다지만 그것이 정말 그녀를 그녀로만 가리키게 하던가? 그녀에게 단일성이란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기실, 자기동일성이란 것을 극도로 신뢰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카본은 모르간을 동정할 수는 없고 연민해서도 안 되며 변호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때때로 순결한 1인칭이, 단일하게 하나의 자아를 규정지을 1인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면, 그녀의 잠든 얼굴을 내려다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언제까지나 그의 품에서 잠드는 고요한 밤이 그녀의 보수로 충분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HAPPY END?

 
1.
사냥 나갔다 온 뒤로 사냥에 썼던 매 좀 애지중지하면서 기르는 추밀원장 이카본이랑 예전에 범인류사 모르간이 까마귀 길렀던 거 생각하는 이문대 모르간 보고 싶다. 정확히 말하면, 인간들은 동물에 그렇게 애착을 갖는구나… 싶을 때가 있어지는 모르간.
🕰️ - 당신도 까마귀 길러볼 생각은 없니?
🍎 - ……공사가 다망해서.
🕰️ - 진짜 이유는?
🍎 - ……애완하는 것과 동등한 것처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나는 명확하게 구분하기 힘들구나.
꼭 두 번 세 번씩 물어야 대답해주는 모르간이 귀여워서 뽀뽀해주고 싶다
1-1.
이카본에게 받아들여지는 범몰간과 이몰간의 다름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두 사람이 사물과 타자를 인지하는 차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몰간은 그녀 스스로는 범몰간과 세계 인식에 있어 차이점은 크게 없다고 생각할 것 같다. 다만 차이점을 가져오는 건 그거임.
이몰간은 완전하게 낙원에서 파견된 요정이고 범몰간은 인간의 태를 빌어 태어나 인간의 요소가 어느 정도 깃든 이레귤러인 셈이니까… 라고 어렴풋이 생각하지 않으려나. 이카본은 그 차이가 그렇게 크게 와닿는 편은 아닐 듯.

2.
회지의 특정 챕터랑 이어지는 이야기(진짜 그먼씹임)
왜 이렇게 이몰간이 범인류사 브리튼 시절의 서른다섯살 이카본 귓불에 칼끝으로 상처 내는 게 좋을까… 귓불이 베일 때의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스물여섯살의 몸으로 되살아났던 이카본 키르히아이젠에게는 그가 귀 뚫는 것도 엄살이 심해 이어커프로 줬던 거 회상하는 여왕 모르간

3.
바다로 가자꾸나.
모르간은 고요하게 소근인다. 헤무르게 가라앉은 이카본의 침음, 곧이어 잠에 빠질 그의 환한 졸음 속에서. 이카본이 그녀와 바다에 가는 꿈을 꾸었다고 했을 적에, 같이 가자고 졸랐지만, 분명 그녀가 말한다면 이제야 함께 갈 염이 났느냐고 말해줄 테지만, 그래도 확신 없는 말로써 간지럽히듯 그를 건드리고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잠든 것처럼 덮인 눈꺼풀과 가지런한 금빛 속눈썹을 바라보면서 모르간은 다시금 소근인다. 바다에 가지 않겠느냐, ……이카본…… 떨어지는 말. 이어지는 호명. 그 많은 것을 입술에 묶어놓으면서. 분명 이튿날 아침 그는 잠들었더라도 잠들지 않았더라도 무슨 말을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카본에게서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잠들었겠지. 무심코 생각하던 찰나에, 이카본의 몸이 느짓하게 뒤척인다. 모르간을 안고 새근대는 숨소리 끝에 음성은 묻어난다.
왜 항상 나를 시험하고 싶어해…….
아. 모르간은 그제야 탄식하며 이카본의 품에 안겨든다. 그는 정말로 그녀의 모든 것을 안다. 어떤 인간 아닌 것의 숨결조차 세례조차 깃들지 않은 채, 애인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모든 것을 생각하는 남자라니. 졸음에 취한 음성만으로 이카본은 속삭인다. 그것만으로 함께 바다에 가자는 약속은 일정을 잡은 것과 다름없다.
3-1.
근데 아직 나 안 자… 같은 말도 아니고 그 많고 많은 ‘모르는 척’ 가운데 그 어떤 것도 택하지 않고서 굳이 왜 항상 나를 시험하려 하느냐고 왜 항상 나의 애정을 확인하려 하느냐고 직설적으로 묻는 이카본은 모르간에게 있어 아주 조금…
지인짜 섬세하고 다정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좀 미미하게 짱난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왜 항상 다 ‘나는 알아’ 같은 말로 얘기해줘… 적인… 그런데 야속하진 않을 것 같고 그냥… 그 말이 필요하고 안도한다는 걸 그녀 자신도 알 것 같았음 좋겠어 타인에게라면 이카본은 그리 말 않으리란 것도

해시태그

 
@가족들아(트친들아) 드림주는 드림캐 가족들이랑 친해? 아니면 사이 나빠? 나 이게 너무 궁금해서 잠이 안 와!
슬프게도…
이카본은 모르간의 가족들과 모르간이 그녀의 가족들과 친밀한 것 이상으로 친밀함
범인류사 모르간이 아닌 비의 씨족들과… 라면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 어떨지…

@드림주/드림캐는 종교가 있나요?
이카본은 초기 가톨릭이 뿌리내린 환경에서도 크게… 신의 존재를 믿지 않았을 듯. 내심으로는 스스로 불신자라고 생각하며, 꽤 무신론적인 생각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진리와 근원이 합일되었던 신대 당시엔 ‘과연 존재하는 신의 진짜 모습이 경전에서 작성된 신과 같을까’라는 불가지론자였고, 현대에 들어서는 헤겔의 선언 이후로 신은 사실상 죽은 거나 진배없다고 생각한 쪽.
모르간은 반면 종교랄 것이 뿌리내리지 않았으며 정말로 신이 죽음을 맞이한 세계에서 강제로 불신자가 되어야 했던 쪽인데 희미하게 종교적 사고관은 남아 있을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마저도 본래부터 있었던 사고관보다는 범몰간의 기억을 받아들이고 체화하면서 그녀에게 남았던 것을 역설적으로 차용한 것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아주 조금만, 어딘가 절대자가 존재해서 용서받을 수 있기를 바라는 실낱 같은 희망이 아니려나. 모르간은 이카본이 읽고 본 것을 모두, 정말로 모두 보고 읽었지만… 그의 무신론적인 사고는 정말로 교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언제나 모르간은 붕괴편 CM대로 “(어딘가 존재한다면)나의 죄를 용서하소서” 인 거고
이카본은 “(감히 날 용서할 권리가 없으니)나의 죄 용서 마소서”인 거지

@ 조는 드림캐/드림주한테 뽀뽀해서 깨우는거주세요 당떨어짐
턱 괴고 꾸벅꾸벅 조는 이카본 슬그머니 내려다보다가 앞머리 손으로 쓸어넘겨 이마 드러내게 하는 모르간 보고 싶다… 미미하게 호를 그리는 이마 선을 보다가 키스하더니 의장 각하, 오늘은 여왕마마 행차가 요란하다고 말 않으십니까? 하는 것도…
근래 들어 나른하게 풀어져서 장난 치는 모르간이 자주 보고 싶은 걸 보면 봄이 오긴 왔나봐

@드림주의 캐릭터성을 가장 잘 요약하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진실과 계몽성
실제로 이카본이 모르간에게 요구한 것은 단 하나 진실이었고 진실 아닌 다른 어떤 것도 설 자리가 없으리라는 것을 공표하는 과정이 칼데아 엔딩의 이야기였으니까…?
뭐랄까 칼데아 엔딩은 모르간이 죽음으로 메시아가 되는 과정과 이카본이 그의 생이 ‘인공적인 도덕성’이 아니라 ‘진실’로 대표되는 것임을 납득하는 과정이나 다름없고…

@: 나 탐라 드림주들의 의외인 점이 궁금해 ,,, 알려줄사람
항상 모르간이랑 이카본이랑 둘이 합쳐 옷 두벌 나오는 1.5인분 옷의 사람으로 나오지만… 사실 이카본 더위 끝내주게 많이 탐

적폐 상아사과

 
1.
이렇게 아침나절 들어오자마자 비가 쏟아지는 날에 모르간한테 부케 주고 싶다. 아니면 부토니에로 꽂았던 꽃 같은 거… 이카본이 리본으로 정성스럽게 장식한 가슴팍에 단 꽃을 빼어 머리에 달아주거든 가당찮다는 것처럼 눈매가 가늘어지는 모습이 보고 싶네.
그리고 그 부토니에 그날 내내 머리에 달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쯤 되면 누군가 물어볼 일도 없고 이카본과 모르간에게 익숙해진 상태가 아닐까.
1-1.
아니 그냥 생각하면 할수록 귀엽지 않나… 하도 맨날 꽃 주고 쪽쪽거리는 애인한테 익숙해져서 머리에 꽃 달아주면 떼지도 않고 ㅍㅍ하는 얼굴로 그냥 내내 달고 다니는 연상의 여성이라니…
그리고 그냥 익숙해져서 다들 그거 어디서 난 거냐고 아무도 안 물어보고 관심도 안 줌 출처가 너무 선명함

2.
가끔 진짜 적폐 같은 게 보고 싶을 때가 있어
이카본이 모르간 볼 쭈물쭈물거리면 이거 싫다고 소심하게 꼬리 끝 탁탁 치는 고양이처럼 이카본 손목 쥐어짜면서 쩔쩔매는 모르간
한참 갖고 놀다가 미안, 하고 뺨에 뽀뽀쪽해주면 한숨 쉬면서 취향 정말 특이하다고 말해주면 좋겠어…

토네리코

 
1.
때로 비의 씨족이 그렇게 되고 나서 토네리코의 양육자…였던 선지자 이카본을 생각한다
토네리코는 부지런하게 아침 일찍 일어나는데 이카본은 늘 늦은 오전에나 깨어서 가끔 누가 양육자고 누가 열여섯 살짜리 아기인지 구분 안 갈 때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가끔, 때때로 아침에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 이카본의 잠든 얼굴을 보면서 자그마한 목소리로 속살거리는 토네리코를 생각한다. 처음 마녀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기분, 어떤 마음으로 순례를 준비하면 되는지의 말, 순례를 떠날 무렵 어떤 이름을 쓰면 좋을지 고민한다는 이야기, 대체로 그 말들은 대화보다는 일종의 독백에 가깝겠지만 어쨌거나 이카본에게 그리고 이카본을 위해 준비된 말들이란 말이야
니른하고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그런 독백들로 그를 깨우는 토네리코를 바라보다가 가만히 뺨을 쓸어주고 싶다. 그리고는 고요하게 말하는 거야. 때로 내가, 너의 그 많은 일을 대신해줄까…… 하고 말하고 싶어진다고. 그 애는 결국, 이카본이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겠지만.
 
2.
선지자 이카본이 씁쓸하게 웃으며 토네리코의 머리를 쓰다듬는 날도 있지 않았을까.
내가 그저, 네가 너무 어여뻐서 빨리 자라지 않았으면…… 날이 더디 지나고 더디 자라서 네 어여쁨이 익숙하기만 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것이 유일한 소망인, 아비처럼 너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그 모든 것을 이카본은 숨기지 않고 말한다. 토네리코의 눈에 깃드는 것도 없이, 다만 진솔하게.
이카본은 비비안만은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 그렇게 정해진 생물도 있는 것이다.

3.
비의 마녀 토네리코를 양육하는 선지자 이카본…
수군거리고 험담하는 요정들의 말은 안 봐도 뻔할 것 같다
젊은 선지자 밑에서 자라는데 저 마녀가 우리 좋은 일을 할 리가 없지 속닥속닥
낙원의 요정도 싫어하는데 어디 낙원에서 파견된 억지력의 호문쿨루스는 좋아하겠냐

4.
토네리코의 ‘그다음’을 볼 수 있는 건 정말 어디까지나 이카본이 토네리코를 선생이라고 부르는 소년 선지자여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는 보지 못했지만 본 적도 없지만 그저 영혼에 새겨진 ‘모르간을 보고 싶다’, ‘비비안이 아닌 모르간이 그가 바라는 것’이라는 간절한 소망이 없다면 토네리코의 여왕력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을 것 같아서.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토록 간절한, 그렇지만 모순된 토네리코의 소망을. 자기 자신도 그런 간절하고도 모순된 소망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고 설령 모르간을 정죄하러 온 소년 선지자라고 해도 그 코어는 결코 건드릴 수가 없는 거라고 생각해
근데 이제 이미 성인 상태의 선지자고 토네리코가 이카본을 선생이라고 부른다? 이미 소망을 체념하고 절제하는 법을 스스로 아는 단계인데? 짤없이 우서 죽자마자 이카본이 내가 사천 년 봐줬으면 많이 봐준 거 아니냐면서 토네리코 낙원으로 끌고 가서 칼로 갈아버릴 텐데……

요정기사들이랑 상아탑의 남자랑

1.
🕰️  - 옥스퍼드공.
🐺 - 또 무슨 일이지.
🕰️  - 포옹을 하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하는군.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유대관계를 소중하게 여기는 효과가 있다고 해.
🐺 - 그렇군.
🕰️  - 인간이랑 강아지가 끌어안아도 인간이랑 강아지 둘 다한테 분비된다는군.
🐺 - ……총을 쏠 때도 옥시토신이 분비된다고 하는데. 어디 시험해 볼까?